[컴그아침묵상] 1월 26일
[본문말씀]
사도행전 10장 44-48절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묵상]
오늘 본문은 이방인 고넬료와 그와 함께 하는 다른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들에게 일어난 일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사도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고 후에 방언으로 말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이방인 고넬료 및 그와 함께한 또 다른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곧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을 두고, 두 가지 반응이 등장합니다. 먼저는 베드로의 반응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반응으로는 베드로와 함께한 유대인 형제들의 반응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을 보고 놀랍니다.
그들이 ‘놀라다’라고 할 때 이 헬라어 단어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을 만났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회심 후 복음을 전할 때 모두가 다 ‘놀라’는데, 그때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들이 왜 놀랐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성령을 받는 것은 자신들에게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성령을 받는 일이 자신들에게만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들은 분명 이방인들을 보며 우월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희와 달리 성령을 받았어!”라고 말입니다.
때문에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은 이 우월감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보내신 성령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때문에 성령을 받은 것은 이를 우리의 소유물로서 “나는 받고, 너는 받지 않았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주시다니, 나도 이렇게 선대해 주시는데, 다른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선대해 주시겠구나”라는 반응이 올바른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이 자신들과 같이 성령을 선물로 받고 방언으로 말하는 장면을 보고 마땅히 가졌어야 할 그들의 반응은 놀람이 아니라 ‘찬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이시다!”라는 찬양 말입니다.
신앙은 내가 생산해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진 이 선물로 우리의 기득권이나, 우월감을 삼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는 나에게도 차별 없이 베푸신 것과 같이 그 누군가에게도 차별이 없는 사랑으로 전달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신앙의 연수가 쌓일 때마다 그 시간들이 우리가 만들어낸 자랑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대해 주신 것을 기억하며 우리도 우리와 함께 하는 친구와 동료들을 선대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 차별을 두지 않고 베푸시는 은혜를 함께 즐거워하며 누릴 수 있는 넉넉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