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더욱 자세하게 말하자면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겨자씨’입니다. 겨자씨는 성경에서 ‘작은 것’을 표현할 때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도 겨자씨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이야기 하시는 대목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하여 그 사람은 예수님께로 찾아와 꿇어 엎드려 자신의 아들을 고쳐줄 것을 구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들의 귀신 들린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조용히-아마도 부끄러워서 조용히 물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과 같이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물음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다. 너희의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마지막 물음표 세 개를 제가 상상한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어느정도 맞겠다 싶은게, 그후에 마태복음 기자는 제자들의 반응을 따로 기록하고 있지 않고 있고, 그 다음 대목에서 여전히 예수님께서 걸으실 십자가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지 못한 것에 대해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어 또 다시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언뜻 보아 이 둘은 상충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믿음이 작기 때문에 귀신을 쫓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믿음이 적다는 건 믿음의 양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 너희가 받은 그 믿음은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산을 옮기기에 충분하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믿음을 받은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로 고백합니다. 믿음은 우리 편에서 형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단번에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이 선물은 시간속에서 그 내용과 의미를 확인해 가는 과정들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믿음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세워가고, 아브라함은 그 믿음을 어떻게 확인해 갔는지 하나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역시도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믿음을 수많은 시간속에서 확인해 갔습니다.
믿음은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미 충분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선물로 받은 그 믿음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기에 시간속에서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작다는 말로 믿음을 과소평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흔히 “나는 믿음이 부족해서”라거나, “나는 믿음이 작아”와 같은 말들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이미 충분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이미 충분하다. 시간속에서 이 믿음의 풍성함을 확인해 가자”라고 담대하게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의 믿음은 이미 충분합니다. 때문에 겨자씨 한 알 같아 보일지라도 충분합니다. 이 충분한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우리들의 시간속에서 그 믿음을 알아 갑시다. 사랑합니다.
생각하기 :
1) 평소 내 믿음이 작은 것 같아 실망한 적이 있나요? 글을 읽고 내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생각해 보세요.
2) 지금 당신의 삶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믿음의 풍성함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믿나요? 나는 지금 어떤 과정을 통해 내가 선물로 받은 믿음을 확인해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