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 선지자는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와 약 20년 간 성전을 짓지 않는 백성을 향해 “성전을 지으라”고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을 지으라는 데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약속)”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기적적인 본국으로의 귀환 이후, 그들에게는 “아직도 하나님과의 언약이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이 존재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전 재건을 통해 “그 언약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답을 하십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 계속하여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에 대한 가시적인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은 이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성전은 삶의 중심이자 모든 세계의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가시적인 장소였으니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성전에만 갇혀 계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 20년이나 지체되고 있는 성전 건축을 다시금 말씀하시는 것은 그 언약에 대한 변함없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형편에 따라 하나님을 대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에게 신실하지 못한 때에도 여전히 신실하셨습니다.
학개서에 등장하는 성전의 기초는 매우 초라합니다. 그 기초가 초라한 것으로 보아, 분명 약 5년 뒤 완성될 성전도 그 이전 솔로몬 때에 비하면 굉장히 초라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이전 성전의 영광을 본 자들은 “과연 이 성전에 하나님께서 거하실까?”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그러한 성전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성전 건축에 있어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격려를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생각한 성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중에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여전히 함께 하신다는 사실은 그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과는 달랐던 그 초라한 성전을 보며, 오히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이구나” 라는 게 이스라엘이 결국에 가졌을 생각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고백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고백으로, 아니 어쩌면 더 깊고 진한 고백으로 연결됩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하나님께서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에 대해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이라는 제한된 장소를 통해 그들의 백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신약에서는 우리를 성전 삼아 우리와 완전히 함께 하시겠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구약의 성전이 바라고 고대한 ‘진짜 성전’이시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증거이자, 의지이며 진짜 성전이십니다. 그분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곧 다가올 성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아버지 하나님의 의지와 사랑으로 가득하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추가 :
아! 다음 수요기도모임 때부터는 어떤 성경을 나누는지 궁금하실 것 같은데(맞으시지요^^;;), ‘사랑의 사도 요한이 기록한, 요한일서‘를 함께 살펴볼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