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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학교 이야기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감정론』 소개의 글

by 명도사님 · 2026.9.30.

이번 학기에는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가 1746년에 저술한 『신앙감정론』(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을 배우고 있다. 『신앙감정론』은 성도의 신앙생활에 유익이 있는 작품이다. 이번 주부터 칼럼에 『신앙감정론』에 대해 연속해서 다뤄보려 한다. 오늘은 신앙감정론의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제1차 대각성 운동(1730년대~1740년대) 때 부흥을 경험한 인물이다. 당시의 부흥은 참된 성령의 역사였지만, 예상치 못한 반동을 낳았다. 반동은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부흥을 성령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반부흥파였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까지도 부흥으로 치부하는 열광주의였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양 극단을 반박하고, 바른 부흥에 대해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신앙감정론』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저술되었다.

『신앙감정론』은 3부로 나뉜다. 1부는 '감정의 본질과 신앙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2부는 '신앙 감정이 진정으로 은혜로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는 표지들', 3부는 '진정으로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을 뚜렷이 구별해 주는 표지들'에 대해 논한다.

1부에서 감정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감정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밝힌다. '감정'이라고 번역된 Affection이라는 단어에 대해 에드워즈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나는 감정이 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의지와 성향이 지닌 더 활기차고 감지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148) 그리고 "참된 신앙은 대체로 감정 안에 있다"(153)고 말한다. 감정이 없이는 참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182). 기독교는 약하고 무감각하며 생기 없는 언행이 불일치하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며(153), 성경은 다양한 곳에서 믿음을 두려움, 소망, 사랑, 미움, 갈망, 기쁨, 슬픔, 감사, 불쌍히 여김, 열정 같은 다양한 감정들과 연관 짓기 때문이다(158).

2부에서 '소극적 표지'라고 하는 '신앙 감정이 진정으로 은혜로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는 표지들'에 대해 다룬다. 소극적 표지는 참된 은혜로 인해 결과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참된 은혜로만 생겨난 결과라고 볼 수 없는 감정이다. 이는 섣불리 모든 감정을 참된 은혜의 결과로 치부하는 열광주의와, 모든 감정을 참된 은혜의 결과에서 배제하는 반부흥파를 모두 비판하기 위해 쓴 장이다. 소극적 표지에는 12가지가 있는데, 감정의 강도, 몸의 격렬한 반응, 신앙과 신학에 대한 관심, 감정의 자가 생산 여부, 성경이 갑자기 떠오름, 사랑의 피상적 표현, 감정의 정도, 감정의 체험 순서, 종교적 행위와 의무의 피상적 실천, 찬송을 열심히 부름, 자신의 구원 확신, 타인에 의한 구원의 확신이 있다. 이 표지들은 모두 은혜의 결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이 표지들로는 참된 은혜로 열매를 맺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표지들은 그리스도인만 맺을 수 있는 열매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표지들에 대해서는 이후 칼럼에서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

3부에서는 '적극적 표지'라고 하는 '진정으로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을 뚜렷이 구별해 주는 표지들'에 대해 다룬다. 적극적 표지는 반드시 참된 은혜로만 생겨날 수 있는 열매이자 결과이다. 적극적 표지에도 12가지가 있는데, 성령의 내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한 인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 참된 겸손, 성품의 변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감, 하나님을 두려워함, 신앙의 균형, 하나님을 향한 갈망,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이 있다. 이 표지들은 모두 은혜의 결과로만 주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이 표지들로 참된 은혜로 그리스도인을 분별할 수 있다. 이 표지들은 그리스도인만 맺을 수 있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이 표지들에 대해서도 이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몇 가지 주의할 사항들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먼저, 이 표지들은 성경을 통해 주어진 것이다. 에드워즈는 성경에서 근거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이후 글을 쓸 때에도 성경 구절 언급을 되도록 상세히 할 것이다. 둘째로, 주님께서 이 표지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타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표지들을 통해 타인이 진짜 그리스도인인 것을 분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일이 아니다. 표지들을 통해 타인의 신앙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확실한 것은 아니며, 또 우리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다. 마지막 날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실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제는 이 표지들을 열심히 스스로에게 적용하여 참된 신앙을 끝까지 연단해 나가는 것이다. 타인의 신앙의 연약함이 드러날지라도 정죄보다는 그를 위해 애통해하며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로, 앞서 언급한 듯이 표지를 통해서 완벽하게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표지는 참되고 완전할지라도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 표지 중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것은 마지막 표지인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이다. 주님께서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표지는 '행위'이다. 만일 우리의 삶에 참된 착한 행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골방에서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늘 구해야 하는 것은 '참된 겸손'이다. 교만은 인류의 첫 범죄이자 마지막까지 싸워야 할 죄악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안에 내재한다. 가장 겸손한 모습을 가장해 교만할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에드워즈는 겸손한 사람을 거지라고 표현한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집 문 앞에서 항상 거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476). 그리고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공경한다.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조차 공경한다. 하지만 그들의 죄를 승인한다는 암시를 주지는 않는 '균형'을 잃지 않는다(477). 겸손은 위선자들이 가장 많이 실패하는 영역이라고 한다. 이 장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위선자로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앞으로 몇 주간, 칼럼과 설교를 통해 『신앙감정론』을 통해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주신 은혜를 교회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

참고문헌: 에드워즈, 조나단. 『신앙감정론』. 존 스미스 편. 정성욱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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