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22장 1-11절
1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본문 묵상]
욥기 22장은 엘리바스의 말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처음 말을 건넨 친구입니다. 그 첫 번째 친구가 욥에게 세 번째 말을 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욥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이전에는 "악인이 죄를 지어 벌을 받는다"라고 말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욥, 네가 문제다.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세 번째 말은 세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말의 강도일 뿐, 핵심은 같습니다. 그런데 이는 다른 친구들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친구의 말은 모두 '인과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과율.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에는 불완전한 '너'가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불완전함을 꼬집습니다. "네가 회개할 일이 있는데 회개하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합니다. 누구에게나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욥의 상황은 단지 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욥은 친구들의 반복되는 말에 항변합니다. "어디 나만 불완전하냐?"라고 말입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해석하는 일반적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좋지 못한 결과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립니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후회, 자책, 연민, 낙심, 불안입니다. "내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오늘 이렇게 된 건 그때 그런 선택을 해서야"라고 말이지요. 실제로 세상도 엘리바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오늘 네가 만족스럽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학벌이 부족해서야. 그때 주식을 하지 않아서야.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해서야. 네 성격이 순응적이지 못해서야."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의 신앙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조건을 만들고, 그것을 신앙생활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으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만큼의 문제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결과의 원인을 우리 자신에게 돌릴 때, 그 원인의 충분조건이 되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은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결국 우리를 가두는 말입니다. 과거에 가두고, 후회에 가두며, 자책에 가둡니다. 그리고 끝내 절망에 가둡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문제의 원인이 "너에게 있다"라고 말하는 이 세상을 향해 그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셨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문제의 원인임에도 우리에게는 그 문제에서 벗어날 힘도, 해결할 능력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친히 그 문제의 원인이 되기로 하셨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없으신 분이 문제의 원인이 되심으로 더 이상 문제가 우리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모든 문제가 "너에게 있다"라고 말하는 세상을 향해 그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제의 원인이 "너에게 있다"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원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인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더 이상 문제의 원인을 우리 자신에게서 찾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운데 엘리바스의 말에 갇혀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때 우리는 과거에 갇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후회에도 갇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라는 원인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일, 그 일들이 만들어 낸 결과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원인이 된 결과 안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컴그 모두가 그리스도로 인해 누리는 이 자유를 맛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껏 우리의 삶을 우리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엘리바스는 모든 고난의 원인을 욥에게서 찾았지만, 욥의 현실은 인과율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2. 우리도 실패와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만 돌리며 후회와 자책 속에 갇혀 살아가기 쉽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대신 짊어지심으로 죄책과 정죄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