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23장 1-10절
1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3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4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5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6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7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8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본문 묵상]
오늘 우리가 읽은 욥기 23장은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답변입니다. 욥은 엘리바스에게 자신이 하나님을 직접 뵙고 현재의 상황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질문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뵈올 수가 없다"(욥 23:8-9)라고 말합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해 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현재의 고난이 나중에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러한 해석도 가능하지만, 자신의 현실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는 욥을 생각해 보면, 이는 자신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답해 주실 것이라는 욥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 신앙의 아름다움은 '질문이 허용된 관계'라는 것입니다. 흔히 질문은 '의심'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질문하는 것을 믿음 없는 태도로 말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질문이 허용된 관계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 증거입니다. 친구들은 정해진 답 안에서 질문하지 말고 순응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의 조언을 따른 기계적인 순종보다, 욥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붙들고 질문합니다.
우리도 욥의 친구들과 비슷합니다. 우리에게 신앙이 좋은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순종은 매우 중요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질문까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을 돌았다는 것은 불순종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바라신 것이 기계가 아닌 인격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40년을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그들과 함께하신 것은, 완벽해 보이는 강요된 순종보다 어설프더라도 자발적인 순종을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질문하는 신앙입니다. 틀리지 않는 정답만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틀릴 수 있는 그 과정까지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아들까지 내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의 인생에 견디지 못할 일은 없다. 네가 열 번 틀리면 나는 열한 번째까지도 너와 함께하는 하나님이다. 그 증거가 바로 내 아들을 내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에 허락하신 이 자유 안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허락된 이 자유가 관계를 더욱 깊은 곳으로 인도합니다. 이 자유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욥은 고난 속에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질문에 답하실 것을 신뢰했습니다.
2. 기독교 신앙은 질문이 금지된 관계가 아니라 질문이 허용된 관계입니다.
3. 하나님은 완벽한 정답보다, 질문하며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