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8월 8일
[본문말씀]
열왕기상 16장 2,3절
- 2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 3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 같이 되게 하리니
[묵상]
세줄요약
북이스라엘의 5왕(바아사~아합)은 모두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고, 아합은 그 중 가장 악했습니다.
같은 죄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지은 죄는 더 무겁습니다. 죄는 관계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담이 아닌 명예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하며, 그 책임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열왕기상 16장은 북이스라엘의 왕들을 집중 조명합니다. 총 5명의 왕입니다.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입니다. 이 5명의 왕은 아합의 즉위까지 약 40년의 기간 동안 북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5명의 왕에 대한 본문의 평가는 ‘그들이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 평가가 극에 치닫는 왕이 바로 아합인데, 본문은 ‘그 이전의 왕들보다 더 악을 행했다’라고 말합니다.
북이스라엘 왕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서 오히려 그들이 쫓아낸 가나안보다 더 가나안화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가나안화는, 가나안 사람들과 같은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더 악한 죄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관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과 싸우는 것과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싸우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같은 ‘싸움’이라는 행위지만, 전자보다 후자가 더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동일하게, 길가는 사람과 신의를 깨는 것과 가족과의 신의를 깨는 것을 생각해 볼 때도 역시나 후자가 더 큰 잘못임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죄란 관계적이라는 것입니다. 관계의 정도에 따라 같은 죄라 하더라도 그 죄는 더욱 더 큰 무게와 책임을 요구합니다.
북이스라엘 왕들의 모습은 그들의 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였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가나안보다 더 심각한 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땅을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합니다. 우리도 이 땅을 살 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산다면 이는 그들보다 더욱 심각한 죄를 행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죄라고 할지라도 절대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란, 관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율법과 계명으로 우리의 삶을 옥죄려는 게 아닙니다. 또는 우리의 연약함을 정죄하거나 판단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들인지를 알 때,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방불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이는 더 큰 무게와 책임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야만 합니다. 이 무게와 책임은 ‘부담’이 아닌 ‘명예’입니다.
서울대학생에게 “서울대학생답게 살아라”라는 것은 부담이지만 사실 ‘명예’에 더 가깝습니다. 서울대학생답게 산다는 것은 모두가 살 수 있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라’라는 이 말은 부담이 아니라 명예로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이 땅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방불한 삶을 사는 것과 같은 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보다 더 치사할 때도 있고, 무서워질 때도 있으며, 계산적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야 할 마땅한 삶, 그 명예로운 길을 외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 명예를 포기한 내 자신을 보며 울 수 있어야 하고, 후회할 수 있어야 하며, 돌이킬 수 있어야 합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세상살이를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명예롭게 여기고 그 무게를 따라 예수님과 함께, 예수살이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자녀가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