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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Dario Jud]

의도하지 않은 삶이 펼쳐질 때

[컴그아침묵상] 5월 16일 

[본문말씀]

사무엘상 27장 7절

7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묵상]

블레셋에 사는 다윗, 깊어지는 삶의 이해
사무엘상 27장은 또다시 블레셋으로 들어간 다윗의 삶에 대해 말해줍니다. 다윗은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 아래로 들어가, 그를 위해 전쟁을 수행하며 블레셋을 위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사실, 다윗이 수행한 전쟁은 모두 이스라엘을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그가 친 적들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가나안 거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양심과 내면의 갈등
어찌 되었든, 그럼에도 다윗이 블레셋 사람 편에 서서 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분명 다윗의 마음 한편에 남아 다윗의 양심을 괴롭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네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이방인의 땅에서 이방인 왕의 아래 들어가 사는 거야?”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자신의 나라를 떠나 이방인들의 땅으로 들어가 산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현재 블레셋에 들어가 산다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정죄받거나 판단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아마 다윗도 이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분명 다윗의 양심을 괴롭게 하는 일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 찾아오는 다윗의 순간들
우리도 살면서 이와 비슷한 일들을 경험합니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 일을 부득이하게 해야만 하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경험함으로써 배우게 되는 분명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자리
저는 다윗이 블레셋으로 넘어가 사는 일에 대해 ‘잘했다’, ‘못했다’를 말하려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부득불 살아내야 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 장면들을 살았을 때 우리가 얻게 되는 유익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유익은 바로 삶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분명 이전에는 원리로만 알았던 율법의 조항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블레셋으로 넘어가 살게 된 이후, 그에게는 그 원리가 삶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원리가 아니라, 도리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헤아리며 공감할 수 있는 원리로 넘어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율법을 삶보다 앞세운 바리새인들
이와 달리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조항 안으로 삶을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삶에 무거운 짐을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안식일에 노동을 하는 게 옳지 않다’는 조항을 가지고 배고픔에 배를 채우는 제자들을 정죄했고, 병 고침을 받은 사람과 고치는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의 조항은 삶을 이해하는 수단이 아니라, 삶이 바쳐져야 할 목적이었습니다. 그 조항이 사람보다 더 컸던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은 삶의 자리에서 오는 깊이, 따뜻함
기독교 신앙은 삶을 더 헤아릴 수 있는 따뜻함이 핵심입니다. 똑똑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뜻함입니다. 그런데 이 따뜻함은 어느 날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다윗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방인의 땅에서 살게 되는, 그런 일들을 통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원치 않는 다양한 일들을 겪을 때,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그 눈이 더 깊어지고 그 깊이는 따뜻함과 연결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끌려갈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자리에 세워지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따뜻함이 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심에도 사람이 되시어, 죄인의 자리에 세워지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통해, 그분 앞에서 비난이 아닌 포용과 정죄가 아닌 용서를 경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모든 일들은 우리를 수용하고 포용하며 용서하기 위한 따뜻함이 된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 역시도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선물해 줄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모든 일들이 나를 포용하기 위한 일임을 압니다. 나도 그러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로 191, 상가 3호  커먼그라운드교회 (우편번호 06372) |  cgc@cg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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