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2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3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묵상]
하나님의 열심. 어느 설교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성경은 우리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에 의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차지할 수 없는 땅입니다. 그땅의 거민들은 분명 이스라엘보다 실력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땅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실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땅은 그들보다 앞서-본문의 표현을 따르자면 맹렬한 불같이-가신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가나안은 그들이 아닌 하나님께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사람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받았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입니다. 좋은 결과의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삼을 때 남는 것은 ‘나의 열심’입니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없는 사람들을 향해서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말합니다. 언뜻보아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람의 넓고 깊은 ‘삶’을 담아내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은 단지 자신의 열심만으로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실력으로 차지할 수 없는 가나안 땅을 차지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땅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주변을 향해 겸손합니다. 가나안이란 결과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담대합니다. 그들의 실력과 별개로 자신들을 위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께 보인 열심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보이신 열심입니다. 그분이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향한 열심을 보이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의 증거가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담대합니다.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겸손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우리의 실력이 아닌,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한 이 겸손과 담대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가장 우리답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당신의 사랑 안에서 우리도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