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묵상]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하기만 하면 돼”의 줄임말입니다. 이미 자신이 답은 다 정해놓고 예의상 상대에게 물어보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지요. 이는 우리의 일상의 관계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대해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선지자 발람이 나옵니다. 그는 유명한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그가 복을 내리는 자는 복을 받는 말이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압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모압 왕 발락(발람과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는!)은 선지자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가도 되냐고 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첫 번째에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자신을 찾아온 모압의 장로들을 보며 그는 다시금 하나님께 묻습니다. “가도 됩니까?”라고 말입니다.
언뜻 보아서는 하나님께 묻는 발람이 하나님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답을 정해 놓았습니다. 모압에 가기로 말입니다. 때문에 그는, 다시금 자신을 찾아온 모압의 장로들을 유숙하게 하고 명목상 하나님께 또 다시 묻습니다. 이미 “가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말입니다. 발람은 ‘답정너’였습니다.
우리도 발람과 같이 답정너 신앙인일 수 있습니다. 내가 답은 다 정해 놓고 그 답대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주 보기 좋게 잘 포장해 하나님께 묻기는 하지만 이미 마음 깊은 곳에는 내가 바라는 답은 정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내가 정해 둔 답대로 답을 해달라 말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은 겉은 그럴 듯 해보이나,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라 말해줍니다.신앙은 우리의 이면이 바뀌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얼마든지 하나님께 뜻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겉모습에 속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심중에 있는 그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 때,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정해둔 그 답까지도 하나님께 내어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고집일 수 있는 그 답을 하나님께 내려 놓을 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발람은 불의의 삯의 노예였습니다(벧후 2:15,16). 답정너는 우리로 하여금 내가 내린 답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그 좋지 못한 일들로부터 돌아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당신의 사랑으로 인도하심에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의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삶이 아닌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