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8월 13일
[본문말씀]
민수기 21장 4,5절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묵상]
코 앞에 둔 가나안 땅에서 나와 다시 광야로 그리고 가나안이 아닌 가나안 동편으로 가는 행로를 두고 이스라엘의 불만과 원망이 터져나왔습니다. 어느덧 4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생각하니 그들의 원망이 이해될 것도 같습니다. “이번에도 또 돌아가야 해? 도대체 몇 년이나?” 그들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을 곰곰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은 곧 하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광야 40년. 이집트를 나와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면 필요없는 시간입니다. 얼마나 걸릴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대략 30~40일 정도를 예상합니다. 한 달이면 가는 그 거리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년을 돌았습니다. 이는 전혀 효율적이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효율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효율이 최고로 여겨지는 오늘날에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은 더욱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 ‘효율’로 그 방법을 삼지 않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효율’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관심이 사랑과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방법은 사랑입니다. 사람은 절대 효율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기곅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계는 효율로 자라납니다. 투입하는 대로 결과 값이 나옵니다. 결과 값이 중요합니다. 효율을 잃어버리는 순간 기계의 가치는 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효율보다 더 깊고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은 투입한 만큼 값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랑이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그렇지 못한 것에 마음을 쏟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기계와 달리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예상한 값과는 전혀 다른 값을 내 놓는 게 바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효율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보면,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효율이 아닌 사랑으로 대합니다. 사랑은 계산해서 이득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허비되는 것만 같습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둘째 아들과, 그 아들과 같은 이스라엘 그리고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삶을 살립니다.
광야 40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이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스라엘의 40년은 허비되는 것 같지만 사실 가장 큰 손해를 감수하신 이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무능력한 신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그렇게 무능력한 신이 되어서라도 이스라엘의 40년을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 자신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지를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이는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통해 밝히 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관심과 방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나타낸 증거입니다. 그분의 관심과 방법이 우리를 살립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관심과 방법이 우리를 살립니다. 이를 따라 우리도 오늘 하루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