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를 생각할 때. 주일학교와 관련된 글을 남기려 합니다. 그전에 먼저 제가 읽은 책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인용하는 책은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서양사와 교회사를 가르치는 최종원 교수님의 <교회, 경계를 걷는 공동체, 비아토르, 2024>입니다.
=========
“이런 현실에서 교회가 가난, 순결, 복종을 얘기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현실 부정이자 도피 내지 자격지심의 발로처럼 보인다. 애당초 교회가 커질 가능성이 없어 보이니 자기 합리화의 길을 걷는 것일 수도. 그럼에도 가난, 순결, 복종과 같은 기독교의 전통적인 가치가 유효하다고 믿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공동체 경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교회학교를 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눈에는 공동체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관계와 삶이 보인다. 아이들에게 지식이나 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지 않더라도, 예수를 말하는 어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그 가르침이 전달되고 인식될 것이다(필자 강조). 예배 시간에 전해지는 어른의 언어, 설교의 언어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감성과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스며들 수 있다면, 공동체 감성을 함께 형성해 갈 수 있다.”
=========
개척을 하고 1년 반을 지나며 아이들이 있는 몇몇 가정이 우리교회에 방문했었습니다. 그때마다 주일학교 공간이 없는 것(심지어 자모실조차도!)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고 돌아갔었습니다. 혹자는 주일학교 공간이 없는 것에 대해 우리교회가 ‘주일학교에 대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절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학부에서 나름(?) 기독교교육을 전공한 교육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가 이 작은 공간에서 개척을 하며 그린 주일학교에 대한 그림은 ‘함께 꾸려가는 교육’이었습니다. 아이들을 가진 가정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아이들의 신앙교육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아이들의 신앙을 위한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교회를 방문한 분들의 주일학교 공간에 대한 아쉬움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교회가 그린 주일학교에 대한 그림이 ‘너무 순진(?)하고 또는 이상적(?)이었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제가 소개한 이 책에서 위로가 되는 대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체계적인 교회학교를 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눈에는 공동체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관계와 삶이 보인다. 아이들에게 지식이나 말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지 않더라도, 예수를 말하는 어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그 가르침이 전달되고 인식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체계적인 교회학교를 하지 못하더라도”는 정확히 우리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교회에는 체계적인 교회학교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다음입니다. “아이들의 눈에 공동체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관계와 삶이 보인다”. 저는 이 부분에서 우리교회에 비록 주일학교는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교회는 이미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하고있는 공동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교회학교가 있을 때에만 교회교육이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교회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일 드리는 예배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매주일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말이지요(저자는 이를 ‘공동체 감성’이라 합니다!). 아이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우리 공동체의 모든 모습(공동체 감성)들이 아이들을 위한 교회교육입니다.
우리교회가 아이들이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울타리가 될 수 있기를, 또 그러한 공동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여 훗날 아이들이 “나에게는 컴그라는 좋은 공동체, 좋은 어른들이 함께 있었다”며 공동체에 대한 경험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함께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신앙 공동체로서 함께 자라납시다. 그렇게 함께 공동체 감성을 형성해 갑시다. 우리 곧 이 교회 공동체가 아이들을 위한 신앙교육의 장입니다. 우리교회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