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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 권경욱]

탁월함을 사랑하는 시대

탁월함을 사랑하는 시대. 최근 우리교회는 주일마다 <자기로부터의 구원>이란 주제로 고린도전서를 나누고 있습니다. 어느덧 아홉 번째 내용을 나누었더군요.

고린도전서를 설교하며, 고린도가 ‘탁월함’을 사랑한 도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내에서는 이 탁월함을 ‘지혜’라고 하는데요. 이는 우리가 사는 작금의 시대에서도 동일하게 사랑하는 대상인 것 같습니다. 

목회를 하는 제 자신도 ‘탁월함’을 사랑하는 것을 봅니다. 관계의 탁월함, 설교의 탁월함, 행정의 탁월함 등. 개척을 하니 다방면에서 탁월해야 하고, 또 탁월해져야만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설교는 기본이고~”와 같은 말들 말이지요. 그런데, 요즘 제가 이 탁월함을 추구하고 사랑하는 일에 큰 흥미를 잃었습니다. 저의 탁월함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누군지 눈치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예,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탁월함 그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자신의 탁월함을 사랑하는 것보다 제 자신과 우리를 더 사랑하셨습니다. 그 증거가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전혀 탁월해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이 자신의 탁월함이 아닌 제 자신을 더 사랑했다는 사실, 곧 그 십자가 앞에서 더 이상 제 자신의 탁월함이 아닌 그분을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너무 싱거운데? 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만약 저의 탁월함이 제 목회의 근거라면 저는 분명, 제 목회에서 좋은 일을 만나거든 ‘역시 내가 탁월해서 그런 거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만약 좋지 못한 일을 만나면 ‘내가 더 탁월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거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저의 탁월함을 목회의 근거로 삼게 되는 순간 저는 절대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물론 행복한 삶도 불가능하겠지요! (제 탁월함을 사랑하면 할수록 저는 더 이상 목회를 섬김이 아닌, 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여기게 될 것이 뻔합니다!)

저는 저의 탁월함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주어진 목회나, 저의 삶을 제 자신의 탁월함에 기대지 않으려 합니다(물론 탁월한 것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만..^^..). 도리어 자신의 탁월함을 내려놓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살 것입니다. 

“탁월해져야만 한다”는 세상의 협박 아닌 협박 앞에서, 그리스도로 인해 도리어 “탁월해지지 않아도 된다”를 외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우리의 탁월함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탁월함을 내려놓으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입니다. 사랑합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로 191, 상가 3호  커먼그라운드교회 (우편번호 06372) |  cgc@cg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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