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월 10일
[본문말씀]
창세기 32장 27-28절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묵상]
야곱의 인생을 요약하면 ‘씨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 에서와의 씨름이 대표적이지요. 아버지 이삭과도 씨름을 이어간 야곱은 고향을 떠나 삼촌 라반과도 씨름을 이어갑니다. 야곱의 인생은 ‘씨름’하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어디 야곱만 그렇습니까. 우리의 인생도 ‘씨름’의 연속입니다. 물론 주제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권리’가 그 인생 씨름의 주제였다면, 우리 각자는 각자의 주제들이 있지요.
야곱과 우리 각자의 씨름의 주제를 가만 살펴보면, 다른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을 장악하고 싶은 것’. 그게 우리가 하는 씨름의 내용들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큼은 절대 안돼’, ‘이건 내가 해야만 해’와 같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주제들, 그 주제들 너머에 있는 우리 마음의 깊은 내면에는 결국에 ‘내가 내 삶을 장악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야곱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씨름을 걸어오십니다. 야곱에게 이 씨름은 굉장히 아픈 씨름입니다. 그러나 이 씨름은 꼭 해야만 하는 씨름입니다. 야곱이 해오던 씨름을 포기하게 만드는 씨름이기 때문입니다.
얍복강에서의 야곱은 자신에게 씨름을 걸오신 하나님으로 인해, 야곱이 아닌 새로운 이름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있다면 딱 한 존재 뿐입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이론적인 이름이 아니라, 관계적인 이름입니다. ‘너는 나를 이길 수 있는 존재다. 너와 나는 그렇게 친밀한 관계다. 나는 너의 부모가 되고, 너는 나의 자녀가 된다’라는 의미가 바로 이스라엘인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해오던 씨름을 멈추고, 이제는 자신이 야곱의 씨름을 대신 하시는 하나님이자, 부모라고 말씀하시는 게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각자의 씨름판에 하나님께서 씨름을 걸어오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이것만큼은 안돼’라는 그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붙들고 놓지 못하는 그 씨름에 하나님께서 씨름을 걸어오신 것이지요. “너가 붙들고 놓지 못하는 그 씨름, 이제는 너의 부모인 내가 한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우리 인생에 놓인 씨름들을 자신이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 인생의 씨름을 자신이 직접 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어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해결되지 않는 그 씨름을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씨름으로 인한 모든 결과를 자신이 대신 받으시고, 우리에게 그 씨름에 대한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게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모든 씨름을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의 샅바를 하나님께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분만이 우리 인생을 더 아름답게 살아내실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씨름판과 같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아름다운 손길이 우리 인생의 씨름을 멈추게 하시고, 당신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인생의 모든 씨름을 대신 하신 그리스도를 바라게 하여 주옵소서. 씨름으로 거둔 것도, 잃은 것도 없는 인생이 우리 임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씨름을 통해 거두신 모든 승리가 우리의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