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묵상]
‘마음껏’. 아마도 기독교신앙을 가지고 ‘마음껏’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마음껏 보다는 절제가 우리에게 더 익숙한 신앙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절제’의 또 다른 이름은 ‘마음껏’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이 둘은 사실은 신앙의 한 태도가 됩니다.
오늘 야곱의 인생을 보면, 정말 ‘마음껏’ 산 인생입니다. 자신이 갖고자 하는 것을 위해 형을 속이고, 형의 것을 빼앗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까지 속이고 아버지로부터도 빼앗는 삶을 산 게 야곱이지요. 삼촌의 집으로 도망와서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위해 삽니다. 바로 ‘라헬’입니다. 칠 년을 수일같이 여길 정도로, 야곱은 라헬을 원했고 이를 위해 ‘마음을 다해’ 삽니다. 정말 야곱은 ‘마음껏’ 자신의 삶을 사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껏 사는 야곱의 인생에 또 다른 마음을 다해 사시는 분이 계신데 그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야곱의 인생은 야곱의 ‘마음껏’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껏’으로 바뀌는지를 보는 게 관전 포인트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을 자신 마음 대로 살았습니다.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야곱을 향해 물과 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다해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인생을 ‘마음껏’ 산 것보다 더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 마음을 다한 그 ‘마음껏’이 더 크다는 게 야곱 인생의 이야기이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기독교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마음껏’ 안에서 우리도 ‘마음껏’ 사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다하신 것을 따라 우리도 그분에게 우리의 마음을 다해 사는 것, 그게 기독교신앙이 말하는 마음껏이며, 우리가 그분을 위해 이 세상에서 절제의 열매를 맺어내며 사는 모습입니다.
마음껏 사시길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를 향하신 마음을 다한 그 사랑 안에서 말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다해 사랑하신 그 사랑 안에서 우리도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마음껏 우리의 삶을 사는 복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