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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Nick Fewings]

못난 곳에서도 함께 계시는 하나님

[컴그아침묵상] 1월 3일 

[본문말씀]

창세기 28장 16절

16 야곱이 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묵상]

‘내 동생 아우 야곱을 죽이겠다’는 에서의 울부짖음에 이삭은 야곱을 리브가의 오빠, 라반의 집으로 피신 시킵니다.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던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데, 하나님을 만난 후에 하는 고백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했다”

야곱에게 하나님은 이분법적인 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는 계시지만, 여기에는 계시지 않는 그런 하나님 말이죠. 아마도 야곱이 생각한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단에는 계시지만 그 밖에는 계시지 않는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자신이 잘못해 도망가는 중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야곱의 못난 자리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못난 자리에서도 함께 하시는지 이제야 알았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난 곳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못난 곳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가장 못난 자리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못난 자리까지 밀고 찾아들어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게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못남을 가져가시고,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안겨주신 것입니다. “너의 가장 못난 자리에서도 나는 너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다. 너가 못났을 때에도 나는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는 하나님이다. 나는 너가 가장 못났을 그때에도 내 자신을 너에게 주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이지요. 기독교신앙은 우리의 가장 못난 모습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말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시대는 이 ‘은혜’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정치적 이념 사이로는 더욱 삭막합니다. 이 ‘은혜’는 없습니다. 상대의 못난 모습만이 전부이지 그곳에도 하나님이 계실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상대는 오직 창녀이며 세리와 같은 죄인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죄인들 사이로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인들 사이에 나와 우리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야곱의 “이곳에도 하나님이 계셨구나”라는 고백이 ‘은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야곱의 이 고백이 우리 개인과 더불어 우리 사회를 은혜로 적실 수 있는 고백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그곳에도 계시다는 것을 겸손히 마주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상대를 적으로, 죄인으로 낙인 찍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회복하여 주옵소서. 왜냐하면 당신이 그렇게 낙인이 찍힌 저의 인생에도 함께 하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로 191, 상가 3호  커먼그라운드교회 (우편번호 06372) |  cgc@cg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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