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묵상]
이땅을 다스리는 은유로 등장하는 바벨론은 역사의 종국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문을 닫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자, 우는 자들이 등장합니다. 본문 15절과 19절에 울며 애통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우는 이유를 가만 보니 ‘자신들이 얻을 이익들이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을 위해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눈물을 흘린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질 때, 눈물의 의미가 상대에 대한 그리움이나 슬픔이 아니라, 앞으로 상대에게 받지 못하게 될 ‘선물’ 때문이라면, 그동안 이 관계는 굉장히 잘못된 관계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자들의 태도가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제일 삼아 관계를 맺는 게 일반입니다. 내 사업을 위해 사람을 사용하고, 내 과제를 위해 또는 사람들에게 내가 더 잘보이기 위해 사람을 이용합니다. 오늘 바벨론을 그렇게 이용했던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을 그렇게 사용했던 바벨론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이용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이용한 사건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우리를 위해 이용 당하신 사건입니다. 그 무엇보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먼저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심으로 우리와 그분과의 관계는 세상의 일반보다 더 깊고 풍성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일들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눈치를 보거나,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관계를 넘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이용 당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 역시도 우리 주변을 향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어떤 손해도 예수님 자신이 손해를 당하심으로 우리에게 안겨주신 충만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는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걸음이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무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이 세상 한복판에서 도리어 그 손해를 기꺼이 자신의 것으로 감수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히 알고 싶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손해 받으심으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을 소유한 자로 용기내어 이 땅을 사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