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묵상]
요한계시록 17장은 일곱대접 심판의 확장판(?)과 같습니다. 큰 음녀가 등장하는데, 이어 열 왕과 짐승이 등장합니다. 이 셋은 서로 하나가 되어 교회를 핍박하는 ‘악’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마지막입니다. 16절을 보시면, 열 뿔(열 왕)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결국에 그녀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묵상하며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본문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서로 같이 하나가 되어 교회를 핍박하다가 왜 갑자기?’ 실소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게 이들의 자연스러운 결론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악의 특징은 ‘하나됨’이 아니라 ‘분열’과 ‘다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이 이 세상에서 보일 수 있는 자신들의 모습은 결국에 미움이며 분열입니다. 이는 우리를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와 서로가 완전한 연합 가운데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 삼위 하나님 간에는 그 어떤 미움도 분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를 향한 완전한 사랑과 성자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을 향한 완전한 사랑의 순종을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와 성자를 사랑으로 엮으시는 분이십니다.
기독교인은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인 사랑 안에 초대받은 자들이며, 그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분열과 다툼은 절대 안 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돌아서야 합니다. 분열과 다툼을 떠나, 도리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신 사랑 안에서 서로를 향한 희생과 섬김이 가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에게 그러하시듯이, 또 우리를 향해 그러한 사랑을 베푸시듯이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그 사랑을 더욱 알게 하시어 분열과 다툼을 넘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