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5월 11일
[본문말씀]
고린도후서 13장 4절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묵상]
본문에서 등장하는 ‘약함’이란 주제는 이미 10장부터 언급된 주제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울이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도의 ‘강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울은 계속해 ‘약함’이란 주제를 반복해 언급합니다.
본문에서 ‘약함’이란, 다양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으나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이 가진 ‘힘’과는 반대되는 ‘약함’을 의미합니다.
앞서 살핀 것과 같이 바울은 당시 배경에서 ‘강함’의 근간이 되는 ‘자랑’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자랑이 필수인 시대에서 자랑은 곧 자신의 ‘강함’과 연결이 됩니다. 하지만 바울의 관심은 자신이 아닌 ‘예수’였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자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만 높아지는 것이었으며, 자신을 자랑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를 자랑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은 “어떠한 방도에서든지 전해지는 것은 예수이기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며 예수를 전하는 자들에 대해서 개의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약함’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보이신 ‘약함’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은 사람이 되어 이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그분이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한 자로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에서부터 이미 ‘강함’은 물 건너 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약함의 극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은 ‘강함’의 원리가 지배하는 이 세상을 역행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세상의 ‘약함’과 같이 이땅에 심겨진 그리스도에서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심으로 진짜 ‘강함’으로 거두셨다고도 말합니다. 곧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약함으로 심고 강함으로 사신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추구하라 외치는 ‘강함’은 결코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이 약함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방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약한 자들을 들어 사용하시어 스스로 강하다 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심으로서 오직 사람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주목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강해지라고 몰고 가는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약함으로 심고, 우리를 강함으로 거두실 하나님을 바라시길 바랍니다. 그분의 약함이 우리의 자랑이듯이 우리의 약함 역시도 곧 그분의 능력이 드러나는 자랑이 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약함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자랑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것을 경험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아름다우신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삶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