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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그아침묵상

시편, 허물을 용서받는 자가 복 있는 자다

by 권목님 · 2026.9.17.
[사진 출처 Unsplash의 Andrey K]

[본문 묵상]
시편 32편 1-11절
1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5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6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7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8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9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재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가지 아니하리로다
10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1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본문 묵상]
시편 32편은 어떤 신자가 훌륭한 신자인가?에 관해 말해줍니다. 여러분들은 훌륭한 신자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죄를 짓지 않는 사람, 착하고 성실한 사람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으실까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과 달리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훌륭한 신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사람은 복이 있다(1절)"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 시인은 누가 복 있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용서받는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다는 건 뭘 전제하는 것입니까?? 죄를 짓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시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말이지요.

물론 시인이 말하는 건, 죄를 짓는 그 자체가 복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죄를 안 짓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생각 같아서는 기왕이면 죄를 짓지 않는 자가 복이 있는 거 아닙니까? 죄를 짓지도 않고 용서해 달라 말할 이유도 없는 신자가 복이 있는 자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시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자가 아니라, 죄를 짓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입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죄를 짓는 그 자체를 복이 있다라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게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기왕이면 회개할 게 없는 신앙이 좋은 신앙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왕이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아쉬운 소리하지 않는 게 잘 살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죄인인 우리에게 필요한 건, 회개할 일이 없는 게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때 일어나는 일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해야 합니다. 이는 날마다 그분 앞에 나아가 빚진 마음으로 또는 죄책감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죄를 지어 죄인이 되는 게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의 심각함을 깨닫고 우리의 심각한 상태를 위해 하나님께서 치르신 값을 생각하는 게 바로 용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죄 안 짓고 사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허물을 용서받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허물을 날마다 용서받으며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은 시인이 9절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노새처럼 고집불통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고집이 세다는 말은 "내가 내 인생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틀리지 않아", "내 생각이 옳아"라는 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바로 길들여지지 않는 노새와 같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날마다 우리의 허물을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부드럽습니다. 내 자신의 생각에 길들여진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길들여진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길들여집시다. 그 삶은 내가 회개할 게 없으므로 오늘 하루 잘 살았다,가 아니라 죄인인 우리를 위해 그분이 행하신 아름다운 일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죄인의 모습이 되시고, 죄인들을 대표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 죄인들이 더 이상 죄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 의인이 되게 하신 놀라운 일들 앞에 설 때, 우리는 회개할 게 없는 '나'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만족이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의 말과 같이 "자신의 허물이 사함을 받는 자가 복이 있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그 크신 사랑에 길들여져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시편 3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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