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시편 30편 1-12절
1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4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6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8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11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본문 묵상]
시편 30편은 성전 낙성가입니다. '낙성'이란 이루고 완성하다는 뜻인데, 성전을 지은 뒤 부른 노래가 시편 30편입니다. 성전을 다 지은 후 부른 노래, 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싶지만 사실 시편 30편에는 성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전을 지은 뒤 부르는 노래라면, 성전의 화려함 또는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시편 30편은 성전 낙성가임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우선 성전 낙성가임에도 불구하고 성전 건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성전의 핵심이 건물 그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성전 건물 그 자체가 성전의 핵심이었다면 반드시 성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 30편을 통해 성전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시편 30편에 반복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내용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즉, 성전의 핵심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성전은 건물이 아닙니다. 물론 건물입니다. 그러나 그 건물 그 자체가 성전은 아닙니다. 그 건물이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성전 낙성가를 통해 성전 건물이 아닌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노래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그 하나님에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그의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편 30편 5절)
그 백성을 향한 노여움보다 그들을 향한 은총이 더 크다는 게 그들이 찬양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노여움보다 은총이 더 크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그분에 관한 성품은 우리 모두에게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대는 절대로 노여움보다 은총이 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노여움을 더 크게 보는 게 우리 시대의 일반입니다.
우리의 삶만 보더라도, 우리 삶을 기준으로 우리가 받을 것을 생각한다면 받을 이유가 더 많습니까? 받지 못할 이유가 더 많습니까? 각자가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대부분은 받지 못할 이유가 더 많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 불안하고 조급하고 두려운 것이겠지요. 만약 내가 내 삶을 기준으로 받을 게 많다고 여긴다면 불안할 일이나 조급하거나 두려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노여움을 더 크게 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오늘 시편 30편은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노여움보다 은총이 더 크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우리의 삶을 해석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죄보다도, 우리의 부족함보다도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더 큽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주장하는 건 그분의 은총과 사랑입니다. 우리의 하루는 그분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인도함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의 오늘은 내가 더 완전해져서 무언가를 쟁취해야만 하는 삶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완전해져서 내 삶의 주관자가 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늘 삶에서 누리는 완전함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완전함입니다. 우리가 이를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마주합니다. 하나는 내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가 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죽으셔야만 해결되는 게 나의 죄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사실로 인해 나는 내가 그 정도로 심각한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입은 사람인가 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심각한 죄인인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그 사랑은 나의 심각한 죄보다 더 크다, 이게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깨닫게 되는 두 번째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죄보다 더 예수님의 사랑이 큽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의 그 어떠한 부족함을 덮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오늘은 그분의 사랑 안에서 이미 완전합니다. 우리의 오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미완의 오늘이 아니라, 이미 그분의 사랑 안에서 부족함 없이 완벽한 '하루'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에 대해 단 하루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 완전한 사랑 안에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포된 복음입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