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31장 35-40
35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38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39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40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본문 묵상]
욥기 31장은 세 친구와 욥 사이의 마지막 말입니다. 이 대화는 욥의 마지막 말로 마칩니다. 세 친구들의 말이 아닌 욥의 말로 대화가 끝난다는 것은, 친구들의 말이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친구들은 '인과응보'로 욥의 고난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에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는 벌을, 의인에게는 상을 주시는 이십니다. 하지만 욥은 자신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만 않다며 삶을 인과응보라는 공식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욥은 31장에서 자신의 삶이 어떠했는지 말합니다. 현재의 고난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하나님께서 아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서명이 여기 있다(나는 그만큼 나의 의로움에 확신이 있다)', '전능자도 이를 아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욥 31:35). 물론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로움을 가진 자는 없지만 그럼에도 욥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압니다. 욥기 서두에서 욥의 의로움과 정직함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사람의 최선이 다인가? 그 최선으로 과연 우리의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 최선은 우리의 현실보다 클 수 없습니다. '죽음'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최선을 다해 살지 않은 사람보다 더 먼저 죽을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그 최선이 모든 것을 허망하게 만드는 죽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최선을 다하면 다할수록 죽음으로 인해 최선의 의미가 더 퇴색됩니다.
그렇다면 욥기는 우리의 최선이 쓸모없다 말하는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이는 욥기 전체의 결론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욥기는 우리의 최선보다 더 큰 하나님의 최선을 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최선 안에 있지 않다, 만약 우리의 삶이 우리의 최선 안에만 있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현실에 삼켜지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선보다 큰 하나님의 최선으로 보라고 말이지요.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의 삶은 우리의 최선보다 더 큰 하나님의 최선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선은 현실에 집어삼킴 당하지 않습니다. 집어삼킴 당하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그것까지도 끌어안아 자신의 최선을 보이시는 게 하나님의 최선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의 최선을 넘어 하나님의 최선 안에 거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최선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삶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삶은 현실에 집어삼킴 당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의 현실을 끌어안고도 남습니다. 넉넉합니다. 그런 삶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최선 안에 있음을 아는 우리가, 현실을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최선 안에 있는 우리의 최선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욥은 고난을 인과응보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2. 우리의 최선은 현실보다 클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최선은 현실을 끌어안고도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