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욥기 15장 1-6절
1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을 그의 복부에 채우겠느냐
3어찌 도움이 되지 아니하는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4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5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좋아하는구나
6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본문 묵상]
욥기 15장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두 번째 말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말을 듣고 분노가 느껴지는 말들을 쏟아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엘리바스는 욥의 반응에 긁(?)힌 것입니다. 당연히 “내가 회개한다”라고 했어야 할 욥이 “나는 동의하지 않아.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따져 물을 거야”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바스는 욥에게 굉장히 센 말들을 쏟아 놓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욥 15:6)
“그래, 네가 한 말들을 들으니 네 고난의 이유가 너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겠다!”라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계속해서 인과응보의 구조를 가지고 욥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어느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완전함을 주장하며 현재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에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엘리바스가 놓친 것은, 그 대상에서 자기 자신을 빼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약 엘리바스가 자신이 한 말을 정말 믿었다면, 절대로 욥을 향해 자신 있게 “네가 처한 현실은 네 잘못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잘못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욥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욥은 고난을 당했고, 엘리바스는 아직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얼마든지 엘리바스와 같을 수 있습니다. 정답의 편에 서서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마치 그 정죄의 공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그 정죄의 공식 앞에 섰을 때,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엘리바스가 욥을 정죄합니다. “너의 죄로 인해 오늘의 결과가 생긴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엘리바스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에 고난이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자신이 말한 공식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해 보았다면, 절대로 욥을 향해 “너의 죄 때문에 네가 이렇게 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정직한 태도는 다 아는 것처럼 욥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욥의 상황을 인정하며 공감하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절대로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정답과 우리는 한편이 아닙니다. 나와 우리 모두는 정답 앞에 세워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정답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정답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정답을 넘어 우리를 대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엘리바스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를 살린 것은 내가 가진 정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만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정답입니다. 그 정답 안에서 서로의 삶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으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세줄요약-
1. 엘리바스는 인과응보의 정답으로 욥을 정죄했지만, 자신 역시 그 공식 앞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2. 우리도 정답의 편에 서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사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3. 우리를 살린 것은 우리의 정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