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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그아침묵상

욥, 정답도 원망도 사랑 안에 있다

by 권목님 · 2026.5.7.
[일러스트 출처 Unsplash의 Hanin Abouzeid]

[본문 말씀]
욥기 7장 12,20절
12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20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본문 묵상]
욥기 7장에서 욥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습니다. 이는 당연하면서도 어색한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욥이 2장에서 보여준 그의 완전함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합니다. 자신의 형편을 보고서도 가만히 두시는 것 같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으실 때에는 이미 자신이 없어질 것이라는 절망 속에서 원망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어 “어찌하여” 자신에게 이런 일들이 있는가 하며 불평을 쏟아 놓습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욥기 2장까지만 있어야 욥기가 완성될 것 같습니다. 보통 신앙에 있어 원망과 불평은 좋지 않은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분명 신앙생활에 있어 지양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욥기는 2장만이 아니라 7장까지도 욥의 모습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욥의 모습을 곁에 두고 바라보신다는 것이 욥기 7장을 통한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복음을 보면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도 있고, 집에 머물며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아들’도 있습니다. 한쪽은 정답을 떠난 아들이고, 다른 한쪽은 정답을 지켰다고 생각한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둘 모두 ‘정답’의 여부가 그들의 아들 됨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정답을 떠난 아들이나, 정답을 지켰으나 결국 정답을 떠난 아들 모두의 곁에 있는 아버지가 그들의 아들 됨을 결정합니다.

오늘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욥이 정답을 말해야 욥이 멋진 사람이라 생각하고, 정답을 말하지 못한 욥은 멋지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이 욥이 되는 것은 그가 정답을 말해서도, 정답을 말하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그의 어떠한 모습 속에서도 여전히 그의 곁에 계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우리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는 정답보다 크시고,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정답보다도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 여정은 아슬아슬하게 정답이라는 줄타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너른 품 안에 안겨, 정답보다 크신 그분의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아들로 여기시는 그분의 품 안에서 우리의 삶을 우리답게 살아내시기 바랍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아야지”라는 강박도, “정답을 말해야만 한다”라는 강박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보다 클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정답에 취하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의 원망 때문에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컴그 모두의 삶에 이런 자유함이 있기를! 하나님의 크심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줄요약-
1. 욥기 7장은 원망과 불평까지도 품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2. 우리의 아들 됨은 ‘정답’이 아니라 우리 곁에 계신 하나님에 의해 결정됩니다.
3. 신앙은 정답을 지키는 줄타기가 아니라, 정답보다 크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욥기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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