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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학교 이야기

예수님의 공로는 고난이 아닌 마음에 있다.

by 명도사님 · 2026.4.29.

렘브란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1634, 캔버스에 유화, 158×117cm, 에르미타주 박물관 , 상트페테르부르크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 29:20)
구약 성경에서 사랑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요?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7년이 며칠 같았을까요? 라헬에 대한 사랑은 노동으로 인한 '수고'와 삼촌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수치'를 능가하는 힘이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주께서는 친히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요 5:39)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사랑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바라보신 택자들이 누릴 기쁨은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능가하는 힘이었습니다(히 12:2).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름다운 것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택하신 백성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있었습니다. 순종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과 열정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만일 십자가의 공로가 '고난의 정도'에 있다면, 예수님보다 더 끔찍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죽음에도 죄인을 구원할 공로는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공로는 '예수님의 어떠하심'과 '그분의 마음'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마음에는 '온전한 순종과 특별한 사랑'이 있습니다.

주님 안에 순종과 사랑을 충만하게 더하신 분은 ‘성령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리신 일은 성령을 힘입어 하신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힘입어 모든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일을 이루실 때까지 그를 도우셨습니다.

성경은 주님을 이끄신 이, 강권하신 이가 성령 하나님이라고 증언합니다(마 3:16, 눅 4:1). 그리고 동일한 표현을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사용합니다(마 9:38, 눅 10:2).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역을 감당하셨듯이, 주님의 제자인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분이 보여 주신 순종의 고결함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시기를 기도합니다.

참고 도서: John Owen, The Holy Spirit, 서문강 역, 『성령론 1』 (서울: 새언약,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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