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스달, 「강이 있는 산악 풍경 속 세 그루의 큰 나무」, 1665-1670, 캔버스에 유화, 138.1x173.1cm, 노튼 사이먼 미술관, 퍼서디나, 캘리포니아 쓰러진 나무는 자연이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생겨난 곳'이 아닌, '성령 하나님이 만드시고 돌보시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랜 기간 우울증을 겪어 본 사람으로서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우울증의 다양한 오류 중 하나는 잘못된 죄책감입니다. 다시 말해 ‘죄가 아닌 것을 죄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울증을 마치 목회자라면 겪지 않아야 할 증상이나 죄처럼 여기게 하는 마음은 자주 저를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사단의 전략에 불과합니다.
최근 다양한 지체들을 만나면서 우울과 불안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 현상들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에 대해 검색해 보면 의학적인 지식들에 비해 성경적인 지식들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성경이 경고한 대로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기록된 거짓된 가르침을 접하게 될 위험도 있습니다. 결국 그러한 가르침은 이미 세상에 있으며(요일 2:18; 4:3), 사람들을 예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요일 2:22; 4:3; 요이 7). 이처럼 사단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속이며 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은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유물론적 세계관 안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증언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영적 세계와 우울증’이라는 주제는 실로 방대한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다루기에는 제 성경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지만, 우울증으로 고통하는 한 영혼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합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에 악한 영향을 주는 사단이 어떤 존재이며 그의 주된 전략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통한 대처 방안을 알아볼 것입니다.
1. 사단: 속이는 자, 거짓말하는 자
사단은 예나 지금이나 ‘속이는 자’이며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사단을 “온 세상을 속이는 자”(계 12:9),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계 20:10)라고 말하며, 주님께서도 친히 사단이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예나 지금이나 ‘광명의 천사’(고후 11:14)와 같이 위장하여 우리를 속입니다. 사단은 때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인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속삭입니다.
2. 사단의 전략
1) 고립
사단의 첫 번째 전략은 ‘고립’입니다. 사단은 우울증에 처한 신자가 고립되기를 원합니다. 신자는 고립될 때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를 고립시키기 위해 사단이 주는 생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입니다. 나의 부정적인 마음을 나누는 것은 다른 사람들까지 힘들게 할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SNS에 무질서하게 생각을 쏟아낼 때 더 큰 비난을 받는 모습을 보거나, 친구에게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을 ‘감정 쓰레기통’ 취급을 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를 본 사람들은 특히 이 생각에 더 쉽게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두 번째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는 ‘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이 마음을 충분히 이겨 낸 뒤에야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헛된 희망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보다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다른 존재를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솔직한 태도입니다.
2) 죄책감
사단의 두 번째 전략은 ‘죄책감’입니다. 우울한 마음은 곧 잘못된 죄책감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우울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면 부정적인 모습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곧 자신을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는 사실을 흐리게 하고(히 4:15), 주님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복음을 왜곡합니다(롬 8:1).
3) 헛된 소망
사단의 세 번째 전략은 ‘헛된 소망’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섣불리 믿음의 문제로만 진단해서는 안 됩니다. 신자도 우울증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믿음’보다는 ‘소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만이 이루실 약속을 마치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속입니다. 세상에서 성공을 맛볼 때 특히 이러한 유혹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단은 그것에 도취하게 하여 하나님의 약속에서 시선을 멀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 실패가 찾아올 때 그것을 크게 보게 하여 깊은 절망에 빠뜨립니다. 사단이 주는 헛된 소망은 허상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을 허무와 절망으로 이끌 뿐입니다.
3. 성령: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반면에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하나님이십니다. 보혜사는 우리의 “곁에서 도우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고(요 14:16), 모든 것을 가르치며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요 14:26),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며(요 15:26),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분이십니다(요 16: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한복음 14:16)
우리의 보혜사이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4. 성령의 도우심
1) 도움을 청하라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조력자이십니다. 태초에 하와가 아담의 ‘돕는 베필’이라고 번역된 단어와 신약에서 사용된 ‘보혜사’라는 표현은 모두 ‘돕는 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울한 사람은 소망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나를 살피시고 도우시는 인격적인 분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신다고 약속합니다(롬 8:26).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기를 원하시며 또한 우리를 도우실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실 때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기도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셔서 서로를 돌보게 하십니다(고전 12:7, 11). 우리는 우울한 마음 때문에 스스로 고립되려 할 때,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가족, 연인, 친구)이나 전문가들(목회자, 상담가, 의사)에게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랑과 다양한 은사를 통해 교회와 지체들을 돌보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2) 말씀으로 분별하라
사단은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하여 우리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우울할 때에는 이러한 마음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고후 11:14)와 같이 위장하여 우리를 속이기 때문입니다.
존 오웬은 그의 『성령론』에서 초대교회에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것이 중단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에는 성경 말씀이라는 은혜의 방편이 있기 때문에, 초대교회 때와 같은 방식으로 사단이 역사할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죄책감이 찾아올 때 성경 말씀을 통해 그 근거를 살피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본문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옳은지 목회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성경을 펼치기조차 힘든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인지 경건한 지체들에게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참된 소망을 품으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참된 소망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만이 우리의 참된 소망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집중할 때 쉽게 절망에 빠집니다. 성령 안에서 거듭난 신자는 자신의 내면에서 죄로 인해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울할 때 사단은 죄가 아닌 것까지도 싸잡아 우리를 고발하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만듭니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 우리의 변호자이신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정죄감에 빠진 지체들에게 저는 때로 다른 영혼의 아픔에 시선을 돌려 보기를 권합니다. 교회에는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도 있고,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영혼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때 우리는 우리를 동정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을 사랑할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그들을 품을 때 수면 위에 운행하셨고 지금도 천지만물을 품으시는 성령 하나님의 따스한 품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할 때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한없는 자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 역시 이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우울함으로 힘들 때 교회에서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며 이웃을 돌볼 때, 설명하기 어려운 자유를 경험하곤 합니다. 이처럼 몸 된 지체를 섬길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연약함에만 머물지 않게 되고, 함께 우리의 보혜사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함께 회복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돌보아주시옵소서.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자들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합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마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옵소서'(요 14:18)
우리의 마음에 참된 소망과 기대를 채워주시옵소서.
이 모든 기도, 지금도 주의 영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참고 도서: John Owen, The Holy Spirit, 서문강 역, 『성령론 1』 (서울: 새언약,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