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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게 죽음을 선고한 사건이다

by 권목님 · 2026.4.4.
[사진출처 Unsplash의 Bruno van der Kraan]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죽음’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큰 권력과 힘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죽음은 ‘죄’가 가진 힘입니다.

죄는 항상 죽음을 통해 사람 위에 군림하고 사람을 종으로 삼습니다. 죽음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 종노릇 하게 하는데, 한 예로 ‘두려움’이 그렇습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거야, 돈이 없으면 너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돈이 없으면 사는 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 두려움에 의해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돈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게 바로 죽음이 우리 안에서 하는 일이고, 우리를 죽음의 종으로 살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 글을 읽는 컴그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최근에 우리가 가장 두려워했던 게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글에서 든 예시와 같이 ‘돈’을 생각할 때 두렵지 않았습니까? 또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때 두렵지 않았습니까? 또는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생각할 때 걱정되거나 두렵지는 않았습니까? 이렇게 죽음은 단순히 생명이 끝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다양한 면에서 우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고 우리를 자신의 종으로 살게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예시를 ‘두려움’으로 들기는 했지만 죽음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 외에도 분노, 미움, 억울함, 통제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러한 죽음의 모든 영향력 아래서 우리를 건져낸 사건입니다. 이 부활은 굉장히 과격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음의 한복판으로 찾아가 죽음에게 죽음을 선고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 있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와는 무관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죄가 예수님께 죽음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가 없으신 그분이 죄인을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하여 죄는 더 이상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죽음을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을 모두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이상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둘 수 없으며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의 삶은 죽음 아래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결론을 죽음이 아닌 자신의 생명 안에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죽음이 만들어 낼 결과로부터 자유합니다. 죽음은 그림자일 뿐이며 그 그림자는 절대로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오늘도 우리를 위협합니다. ‘이 좋지 못한 결과가 결국에는 너의 것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설령 우리의 삶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우리의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좋지 못한 결과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시고 우리를 자신 안에 살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죽음을 이긴 자로 예수님과 함께 오늘을 삽니다. 사랑합니다.

#2026 부활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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