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묵상]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잎사귀와 열매가 비슷하게 맺어집니다. 때문에 잎사귀가 무성하다는 것은 반드시 열매가 있을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게 무화과나무의 특징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본 나무는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였습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나무 가까이로 간 예수님과 제자들은 열매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본 그 나무의 잎사귀 사이로 열매를 찾아볼 수 없었고, 예수님께서는 잎사귀만 있는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이 무화과나무는 풍성한 잎사귀로 열매가 있는 것처럼 가장했습니다. 물론 무화과나무가 사람과 같이 의도를 가지고 ‘가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이는 상징입니다. 잎사귀로 열매가 있는 척하는 신앙에 대한 경고이지요.
오늘 본문을 따라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얼마든지 잎사귀로 열매가 있는 것처럼 나 자신을 속이기도, 타인을 속이기도 그리고 더나아가 하나님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잎사귀만 무성한 신앙이란, ‘내가 삶의 중심’이 되는 신앙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신자가 열매를 맺는 것은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삶의 법이며, 주인이 될 때 우리는 잎사귀로 얼마든지, 그럴 듯하게 나를 속이며, 상대를 속이며 더나아가 하나님까지 속이는 신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주간의 월요일을 지나며, 우리 삶의 중심에 누가 주인이신지, 우리의 열매가 되어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은 어떠한 길이었는지를 묵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실 때 잎사귀에 속지 않고 참 열매를 맺는 신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열매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걸음들 사이로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인 되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