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Unsplash, Estúdio Bloom]
[컴그아침묵상] 3월 26일
[본문말씀]
마태복음 21장 33-46절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묵상]
오늘 본문에는 포도원 주인과 포도원에 고용된 농부들이 등장합니다. 이 둘 간에 일어난 일은 간단하면서 동시에 비극적입니다. 간단하다함은 열매를 거둘 때가 되어 열매를 요구한 주인의 요구에 거절한 농부들의 이야기라는 것이고, 비극적이라함은 주인이 열매를 요구하기 위해 보낸 종들과 심지어 그 아들을 때리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종들은 열매를 요구하는 주인의 요청을 묵살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주인이 열매를 요구한 것에 대해 부당하게 여긴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이야기였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마친 후에 종교 지도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집주인이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라고 말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당연히 그 농부들을 심판(진멸)하고 열매를 부당하게 여기지 않는 다른 농부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받아, “열매를 요구하는 집주인을 부당하게 여기는 너희가 아닌, 열매를 요구하는 집주인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포도원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열매’에 대해 말해줍니다. 어제와 동일하게 열매와 관련된 본문입니다. 사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굉장히 ‘열매’에 관심이 많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는 “열매로 너희가 어떤 나무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말은 ‘열매’가 구원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절대!!). 하지만, 그럼에도 구원에는 필연적으로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게 마태가 말하는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열매를 요구하신다고 말해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열매로 구원을 받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부당하다 여기는 것입니다. 이를 율법폐기주의라고 합니다. “구원 받았으면 됐지, 열매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는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를 율법주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가 있어야지만 나를 받아주실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율법폐기주의와 율법주의는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한 뿌리에서 나온 쌍둥이입니다. 왜냐하면 이 둘 모두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율법폐기주의는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시는거야!”라고 오해하는 것이고, 율법주의는 “열매가 있어야지만 나를 받아주실거야”라고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열매를 요구하신다는 것은 그 열매가 나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야”라는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해지길 원하시기 때문에 열매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복음이 말하는 ‘열매’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은 그 자녀가 잘 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할 때, 너가 내 자녀가 될 거야’라거나, ‘너는 내 자녀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해’라는 마음으로 열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되기 위해 열매를 맺으라 말합니다. 물론 이러한 부모의 요구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열매는 절대 우리를 괴롭히시지 위한 것도 아니며, 우리에게 열매가 있어야지만 나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더 확신하고 더 누릴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에 종들도 죽이며, 그 아들도 죽이는 그 악한 농부와 같이 되지 말고,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을 신뢰해 열매로 응답하는 착한 농부가 되십시다.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착한 농부가 되신 이가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에 성실하게 응답하신 착한 농부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라는 요청을 부당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때문에 그분은 성부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함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에 응답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모두가 볼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에 성실히 응답하셨으며,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는 강압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한 열매이신 예수님 안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을 향해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를 부담이 아닌, 기쁨으로 응답해 가십시다. 열매를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응답하며 사는 삶은 행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열매를 요구하시는 당신을 오해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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