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3월 15일
[본문말씀]
출애굽기 14장 21절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묵상]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알고 있는 내용 중 하나는, 홍해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인데, 이는 영화로 다루어져 더욱 유명해진 성경의 내용입니다.
아마도 홍해 사건하면, 떠오르는 내용은 ‘기적’, ‘놀라움’ 등과 같은 반응일 것입니다. 바다가 갈라졌고, 그 갈라진 바다 사이로 이집트 왕과 군사는 수장되고, 이스라엘은 안전하게 건넜으니 충분히 기적이라 할만하고, 놀랍다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홍해 사건은 그보다 더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홍해 사건을 ‘세례’에 비유합니다. 세례를 홍해 사건에 빗대어 말할 수 있는 이유로는 ‘소속’의 완전한 변화, 그로인한 ‘자유’입니다. 물론 ‘물’이라는 공통점도 있지요.
홍해를 건너기 전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직도! 바로의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자신들을 추격해 온다고 했을 때 그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넌 후에 그들은 더이상 바로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노예가 되고 싶어도 노예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넌 후에 소속이 완전히 변했고, 그들은 변화된 소속으로 인해 ‘자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원과 자유입니다.
먼저 구원이란, 소속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죽음의 소속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게 죽음을 선고하심으로 우리는 죽음의 소속이 되려야 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내가 내 삶의 결과가 아닙니다. ‘나’는 이미 죽음이 죽을 때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내’가 결과된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이루신 모든 일들이 나의 결과가 되는 삶입니다. 쉽게 말해 소속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나에서 ‘예수’로 말입니다.
다음으로 자유란, 아무것에도 소속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래 소속되어야 할 그곳에 소속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곳에도 소속되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자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유는 바른 소속을 말합니다. 백수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여러분 백수는 괴롭습니다. 아무곳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자유는, 그들이 더이상 바로의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자유는 하나님의 소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홍해는 세례 사건입니다. 홍해와 세례는 우리들에게 구원과 자유를 말합니다. 구원이란 소속의 변화이며, 참된 소속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소속을 바꾸시고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신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만이 우리 노래의 유일한 이유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