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3월 19일
[본문말씀]
출애굽기 15장 1,2,23,24절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묵상]
출애굽기 15장은 홍해를 건넌 후에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두 가지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찬양입니다. 다음으로는 원망입니다. 전혀 다른 것 같은 두 반응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서로 먼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찬송과 원망. 전혀 다른 두 반응은 우리 인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반응들입니다. 당연히 모두가 좋을 때는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고, 좋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을 원망할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에 대해 “한 입에서 찬송도 저주도 나온다”라고 말하는데, 우리 삶을 보면 이 말이 매우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우 변덕스럽습니다. 찬송할 때의 온도와 원망할 때의 온도가 너무나 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대할 때, 이 온도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를 향해 찬송이 나올 때는 다 줄 것처럼 ‘사랑해’를 연발합니다. 그러나, 이내 말을 듣지 않을 때는 ‘혼난다’를 연발합니다. 아마 아이들도 저의 변덕에 사랑과 분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주여~)
우리 삶은 이렇게 찬송과 원망 사이로 굉장히 변덕스럽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우리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변덕스럽지 않으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찬송과 원망에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태초 전부터 삼위로 함께 사랑하시며 서로와 서로 간에 완전히 하나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근거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십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완전히 내어 성부 하나님꼐 순종하시기까지 성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 사이의 사랑으로 비롯된 흘러넘치는 기쁨으로서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변덕에 변덕으로 대하지 않으실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러한 하나님 되심으로 인해 너무 많은 혜택을 누립니다. 만약 제가 믿는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매번 그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강박적인 찬송을 만들어 내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찬송이 정말 찬송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저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저에 대해 단 한 번도 변덕스럽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전한 그 관계가 곧 그분의 존재 방식인 것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로 고백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왜냐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와 서로를 사랑하심으로 완전한 하나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찬송과 원망 사이로 완전하신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 하루도 그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변덕을 넘어 그분을 찬양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컴그의 삶 속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멈추지 않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을 예수 안에서 밝히 봅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우리 삶에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