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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Sean Foster]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 생기는 것들, 용기와 기다림

[컴그아침묵상] 3월 14일 

[본문말씀]

룻기 3장 6,7절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7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묵상]

룻기 3장은 룻의 용기와 보아스의 기다림이 등장합니다. 룻은 나오미를 통해 보아스가 풍비박산 난 자신 집을 책임지고 일으킬 친족임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에는 ‘고엘’이란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그 집안의 가장이 죽었을 경우,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 가장의 이름으로 그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역할을 뜻합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신들의 집안에 그 책임과 의무를 이행할 ‘친족’이라고 말하고, 룻은 이 말을 듣고 하루의 추수를 마친 그날 밤 보아스를 찾아가 그의 발치에 눕습니다. ‘발치에 누웠다’는 것은 룻이 보아스에게 자신을 내어 준 행위입니다. 

룻의 이러한 행위는 고엘 제도에서 정당할 수 있지만 동시에 굉장히 무모한(?) 용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보아스가 이를 거절할 경우 보아스는 큰 수치를 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룻의 행동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일에 대한 도전이자, 용기를 낸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결과가 보장된 일에 도전하고 싶어합니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일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요. 룻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이 일에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는 룻의 용기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자의 삶에는 이러한 용기가 필연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내가 바라는 결과가 있든지 없든지,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맞춰지고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룻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다. 그래서 보아스의 발치에 누웠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룻기의 전체 이야기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임을 기억해 볼 때, 룻의 이러한 태도는 분명 하나님의 섭리 안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임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룻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곧 용기를 내 보아스의 발치에 누워 “당신의 나의 기업을 무를 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룻과 더불어 하나님의 섭리를 믿은 또 다른 이가 등장합니다. 바로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다소 놀랄 수 있는 룻의 행동에 대해 오히려 룻의 용기를 알아보고 이를 칭찬합니다. 자신도 룻의 마음과 같다며 기업을 무를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우리 생각에는 날이 밝을 때 당장 일들이 진행되면 딱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이 일을 그렇게 서두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절차를 중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보다 그 절차를 더 우선시합니다. 보아스가 절차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보아스가 공무원과 같이 행동한다는 게 아닙니다. 보아스가 생각할 때 좋은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이 과연 하나님 뜻인지를 믿고 내어 맡기겠다는 기다림입니다. 

보아스 역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좋게 보는 그 결과도 있지만,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그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좋게 보는 그 결과까지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룻에게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그가 기업을 무를 것인지를 묻고 이를 기다리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때 우리는 보아스와 같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에 결과가 보장 되지 않았을지라도 용기를 내게 하고, 우리의 삶에 분명한 결과가 주어질 것 같은 때에도 기다릴 수 있게 합니다. 내 뜻보다 더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다는 것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우리가 걸어가는 모든 길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룻과 보아스보다 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섭리를 가장 분명하게 깨닫게 하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가 가장 밝게 빛나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를 통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확실한 뜻과 그 계획을 보고 듣고 믿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삶에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께서 행하신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가장 아름다운 결과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섭리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더욱 사랑하게 하며 신뢰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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