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2월 19일
[본문말씀]
역대하 6장 18,19절
- 18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 19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주의 종이 주 앞에서 부르짖는 것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묵상]
역대하 6장은 성전이 완성된 후, 솔로몬이 그곳에서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받아내지 못하거든, 하물며 이 성전이 하나님을 받아낼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자신의 기도를 통해 아무리 성전이 크고 위대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담아둘 수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인식은 옳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지음 받은 것은 결코 지은이보다 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 안에 하나님을 가둘 수 없다고 고백한 솔로몬의 기도는 분명 올바른 기도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가 올바른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성전은 그들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최선이 낮아지는 것을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응당 하나님께서도 그 최선 안에 머무르셔야 한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들의 최선보다 더 크신 분이시며,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최선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심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솔로몬의 기도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선 안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것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는 말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최선 안에 갇히지 않으심으로 우리를 자신의 최선 안에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그렇다면 우리의 최선은 필요 없는 것이냐고 묻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최선도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보자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최선, 곧 성전을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최선 역시 소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최선 안에 갇히지 않으신다는 말은, 우리의 최선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기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의 최선만 있다면, 아무리 최고의 것을 드려도 그것은 여전히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선은 미약하지 않습니다. 온전하고 완전합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최선은 우리의 미약한 최선을 더 온전하게 하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부모가 자녀에게 보이는 최선에 비하면 미약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최선이 있기 때문에 자녀의 미약한 최선도 의미를 갖게 됩니다. 부모의 최선이 자녀의 최선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우리의 최선만으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최선 안에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최선 안에서 우리의 최선은 비록 미약할지라도 사랑스럽고 온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최선 안에 갇히지 않으신다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그분의 최선 안에서, 그 최선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마음껏 하나님을 향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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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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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최선 안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자신의 최선 안에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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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최선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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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선이 우리의 미약한 최선에 의미와 온전함을 부여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