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2월 13일
[본문말씀]
사사기 11장 1-3절
1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묵상]
사사기 11장에 등장하는 입다는 서자입니다. 서자란, 첩의 아들이란 의미입니다. 때문에 본처의 아들들은 서자인 입다를 무시합니다. 보통의 무시가 아니라, 이 집에서 너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라고 말을 할 정도니 경멸에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성경 속 홍길동이라고나 할까요. 입다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결국 집에서 쫓겨납니다.
입다는 꽤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세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입다 주변으로 모인 사람들에 대해 ‘잡류’라고 하는데, 이는 직역하면 ‘텅빈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입다가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입다 주변으로 모여들었다는 뜻입니다.
집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 내에서도 크게 인정 받지 못한 입다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지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사람을 조건으로 보시는 분이 아니시란 사실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외모 곧 조건을 봅니다. 그 조건에 의해 사람을 대합니다. 자신 스스로도 자신의 조건을 봅니다. 그 조건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됩니다. 하여 때로 사람은 자신의 조건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봅니다. 내가 이 정도 조건을 가졌으니 하나님께도 보탬이 될 것이란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무엇인가 부족해 외부로부터 더 보탬을 받으셔야 할 분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이 필요없으신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일상 모두를 자신의 뜻 가운데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입다는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추방을 당했습니다. 추방 당해 사는 날들이 어찌 기쁜 날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보통의 기준에 미달된 사람이었고, 조건도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주어진 자신의 삶을 그저 하루 하루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일상을 사는 입다를 사사로 부르십니다. 추방 당해 사는 입다의 모든 삶들을 여전히 주목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입다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을 평가하시는 이가 아니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모든 일상 곧 마음에 들지 않는 그날들까지도 여전히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시기 위해 주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와 우리의 하루를 기꺼이 감당하십시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나의 현재와 나의 하루가 못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의 인생에 관심을 두시며 여전히 자신의 뜻을 일구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주인이 되지 않을 때, 우리 삶에 주어진 여백을 있는 그대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우리의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