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가 두 번째 고난주간을 맞이합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묵상집을 만들어 함께 나눕니다. 작년과 묵상집의 디자인은 같습니다. 삽입된 글귀(예수가 선택한 길, 비아토르)도 같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글귀들로 바꿀까 하고 작년 묵상집의 글귀들을 보니, 한번만 보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묵상 본문과 여는글은 작년과는 다릅니다. 묵상집에 실은 여는글을 이곳에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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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그라운드의 두 번째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매년 맞이하는 고난주간이지만 컴그에서는 두 번째 맞이하는 고난주간입니다. 컴그가 맞이하는 고난주간을 생각하며, 이 고난주간의 의미를 다시금 몇 가지 짚고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흔히들 고난주간에는 평소와 다른 신앙의 실천(?)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새벽기도모임에 참석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는 금식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고난주간을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내는 여러 실천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고난주간을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더 특별하게 지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은 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제가 고난주간을 맞이해 실천했던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실천의 내용에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난주간에 우리도 그와 함께 고난을 받겠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실천 자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우리가 묵상해야 할 그분의 고난은 단지 육신의 아픔이나, 육신의 괴로움 정도가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고난주간에 우리가 더욱 유념하며 기억해야 할 것은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고난을 당하신 목적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신 목적은 우리를 위함입니다. 때문에 그분이 고난을 받으신 것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사람으로 사신 그분의 모든 날들이 우리를 위해 그분이 받으신 고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고난을 기쁘게 걸어가셨습니다. 그분의 공생애를 볼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받는 그 고난을 가지고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도, 자신의 신세를 비탄하게도 여기지 않으셨음을 봅니다. 그분은 도리어 우리를 위한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셨습니다. 자신이 받는 모든 고난이 우리를 위한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커먼그라운드 성도 여러분, 이번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우리 역시도 그분이 우리를 위하신 이 고난을 기쁨으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과 기쁨이 상충되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의미 있는 고난은 항상 우리에게 큰 기쁨 또는 보람을 가져다줍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힘들다 말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며 겪는 고난이 이를 말해줍니다. 부모는 자녀를 보며 자신들이 자녀들로 인해 겪었을 고난을 가지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연민에 빠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고난이 부모에게는 기쁨이 됩니다. 고난과 기쁨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 고난의 대상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사셨습니다. 그 고난은 우리들에게 슬픔이 아닌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그렇게 가치롭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의지를 봅니다. 함께 이 고난주간을 기쁨으로 지나갑시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