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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Fallon Michael]

'지금'은 내 인생의 판단 기준이 아니다

[컴그아침묵상] 2월 5일 

[본문말씀]

사사기 6장 11-16절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묵상]

사사기 6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사 기드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드온이 사사로 부르심을 받던 때에 이스라엘은 미디안으로부터 약탈을 당했습니다. 미디안 유목민들이었는데 이들은 7년이란 시간동안 이스라엘의 추수 기간을 노려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기드온은 타작 마당이 아닌, 포도주 틀에서 숨어 타작을 하는데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습니다. 

기드온을 부르는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을 “큰 용사여”라고 부릅니다. 사실 이는 기드온의 실력을 따라 부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도 알고 있듯이 미디안을 피해 포도주 틀에 숨어 곡식을 거를 수밖에 없는 ‘작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기드온을 큰 용사라 부르는 데에는 그와 함께하시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들에게도 그래도 적용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데에는 우리의 실력을 따른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력을 따랐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는 데에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할 때, 이는 “아니에요, 나 같은 게 무슨 자녀예요?”라고 할 게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받은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드온은 자신을 부르는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이렇게 되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지금 내 인생은 왜 이렇고, 우리 이스라엘은 왜 이렇느냐?”라고 말입니다. 이어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게 아니냐”라고도 말을 합니다.  

이 물음은 기드온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 해석 방식이 나타납니다. 기드온의 해석 방식은 무엇입니까? 기드온은 ‘지금’ 자신의 형편을 가지고 ‘하나님’을 해석합니다. ‘지금’의 좋고 나쁘고를 따라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해석 방식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우리도 기드온과 마찬가지로 ‘지금’을 가지고 내 인생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해석은 지금이 좋으면 좋고, 지금이 나쁘면 다 나쁘다 라고 말을 합니다. 더 나아가 지금을 가지고 하나님도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방식은 ‘지금’을 또 다른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지금이 우리 삶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삶의 해석 기준은 ‘지금’이 아니라, ‘너와 함께하시는 이가 누구냐?’라고 말을 합니다. 12절과 14절에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라고 말을 하는데, 이는 곧 “너와 함께하시는 이를 통해 지금을 보라”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삶의 해석 방식은 ‘지금’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통해 지금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지금’에 휘둘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며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래서요? 어쩌라는 말입니까? 내 지금은 형편이 없는데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지금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일들 안에 나는 만족합니다. 충분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지금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일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지금입니다. 우리의 지금은 지금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지금도 하나님의 손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이 아닌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 안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소 지금에 묶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는 지금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지금입니다. 당신 안에서 만족과 안식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로 191, 상가 3호  커먼그라운드교회 (우편번호 06372) |  cgc@cg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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