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끝내고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 또 그 모든 기구와 제단과 그 모든 기물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한 날에 2 이스라엘 지휘관들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우두머리들이요 그 지파의 지휘관으로서 그 계수함을 받은 자의 감독된 자들이 헌물을 드렸으니
[묵상]
어버이날이 되면 부모는 자녀들에게 무엇인가를 받습니다. 자녀가 어릴 때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쓴 편지를 받는데, 대부분 대동소이하게 뭐라 썼는지도 모르겠는 글씨와 정체 불명(?)의 그림을 받습니다. 아이가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부모에게 그 선물을 줄 때 어느 부모나 과장된 표현을 하며 기쁨을 나타날 것입니다. “우와~ 너무 멋지고, 예쁘다”라고 말입니다.
부모님에게 어린 자녀의 선물은 보탬이 되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신에게 큰 보탬이 되는 것 같이 기쁨과 고마움을 과장스럽게 표현하는 이유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가 그 선물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자녀 입장에서도 부모님께 무엇인가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관계 때문입니다. 만약 자녀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글씨와 그림을 가치있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되겠지요.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이 하나님께 헌물을 하는 장면입니다. 보통 헌물이라 하면 오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요즘과 같이 물질을 나를 위해 사용하는 문화에서는 더욱 큰 오해와 이로 인한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헌물에 대해 생각할 때, 하나님이 무엇인가 부족하여 요구하신다거나 물질에 매여 물질을 구하시는 분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헌물은 앞선 부모와 자녀의 관계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무엇인가는 하나님께 보탬이 되는 무엇이 아닙니다. 마치 자녀가 자신의 최선을 다해 쓴 글씨와 그린 그림이 별 볼 일 없음에도, 내 자녀가 나를 위했다는 관계가 그 선물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와의 관계 안에서 우리의 드림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이 헌물은 드렸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아니고 이를 드리지 못했다고 기죽을 이도 아닙니다. 그분과 우리의 관계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아무것도 아닌 드림이 그분께 의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오늘 하루도 힘내어 삽시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를 당신의 의미로 여기셨기 때문에 우리의 드림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 자유함 가운데 당신께 기쁨으로 드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