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3월 10일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3장 1-7절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묵상]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바울의 복음 전도를 통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아무래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에게 영향을 받은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난 후에는 또 다른 복음 전도자, 아볼로가 고린도교회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과 아볼로. 고린도교회에 영향력을 끼쳤던 사람들입니다.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 “나는 바울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라는 목소리가 생겼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1장을 보면 ‘베드로 파’도 있고, 모든 것 위에 뛰어난 ‘그리스도 파’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교회를 향해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하며, 아볼로와 자신은 심고 물주는 이일뿐이지, 교회를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자신과 아볼로에게 집중된 시선을 다시금 하나님께로 환기하는 것입니다. 이는 고린도교회를 존재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기에 당연한 교정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 심는 이와 물을 주는 이가 아닌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지만, 흔히 우리는 심는 사람과 물을 주는 사람을 주목합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눈에 확연하게 띄기 때문입니다. 심는 수고, 물을 주는 수고는 우리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일어납니다. 때문에 교회가 눈에 띄게 자라났을 때 모두가 주목하는 것은 “누가 심었느냐?” 또는 “누가 물을 주었느냐?”입니다. 실제로 심는 이도 물을 주는 이도 ‘내가 교회를 자라나게 했다’는 인식이 있는지, 자신들이 어떻게 심었고 어떻게 물을 주었는지 앞다투어 자랑을 늘어놓는 장면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이 묵상을 나누는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결과를 볼 때마다 “내가 덜 심어서 이것밖에 결과가 없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물을 충분히 주지 못했기 때문에 자라지 않은 것인가?”라는 자책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 했을 때, 이 말의 의미는 충분히 심었고 충분히 물을 주었기 때문에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도리어 이는, 바울과 아볼로가 충분히 심거나 물을 주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라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셨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고백입니다.
심는 것과 물을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최선을 다해 심어야 하고 물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심는 것과 물을 주는 것이 자라남의 모든 원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심는 것과 물을 주는 것은 언제나 자라남에 있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족함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여전히’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우리의 가정의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충분히 심었느냐?’, ‘충분히 물을 주었느냐?’ 이렇게 해야 비로소 자녀가 잘 자랄 것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부모로서 자녀에게 충분히 심고 물도 주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말하는 심고 물 주는 것은 ‘물질’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금수저’가 되어야 잘 자랄 수 있다고 말하고 그렇게 여깁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설령 부모로서 충분히 심지 못하고 물을 주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자녀들을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을 자라나게 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그 생명을 ‘주관하시는 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나게 하시는 이가 계십니다. 이는 우리의 하루를 다시금 힘을 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라나게 하시는 이를 따라 오늘 하루도 우리 각각의 삶의 장면에 심고 물을 주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자라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너무 다행입니다. 우리가 자라나게 하는 책임을 맡았다면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옥죄고 자책하며 살았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겠습니다. 그 은혜 안에 거하며 더욱 힘을 내 심고 물을 주며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