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2월 3일
[본문말씀]
사도행전 15장 36-41절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묵상]
오늘 본문은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고 갈라져 각각 실라와 마가를 데리고 선교여행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다툼의 원인은 ‘마가를 선교여행에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는 이미 1차 선교여행 당시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선교여행 도중 바울과 바나바를 뒤로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마도 선교여행 중 만난 환난들을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바나바는 1차 선교여행 때 그 교회들을 다시금 방문하자는 바울의 제안을 받아, 그럼 2차 선교여행에는 마가와 다시 동행하자 했고, 바울은 이를 반대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환난을 견디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마가를 1차 선교여행 당시 복음을 받아 제자가 된 그들에게로 데려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마가는 그 환난을 보고 본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서로가 갈라져 선교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후에 바울의 유언과 같이 여겨지는 디모데후서를 보면 바울이 마가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가를 나에게로 데려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골로새서에서도 골로새교회에게 마가를 영접하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아 바울은 마가에 대한 이전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고, 바나바가 자신에게 손을 내민 것과 같이 마가에게도 손을 내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바울의 입장은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갈라진 뒤, 약 3~5년 뒤 기록한 고린도전서에 어렴풋이 드러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사랑장)을 보시면, 바울은 산을 옮길 믿음, 천사의 말, 자신을 내어주는 구제와 헌신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내용들은 바울의 선교여행들이 떠오르게 합니다. 바울의 선교여행은 산을 옮길 믿음의 역사가 있었고, 천사의 말과 같은 기적, 자신을 내어주는 헌신과 구제와 같은 사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와 반대로 정작 마가, 그 한 사람을 품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은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을 쓸 때, 마가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위대해 보였던 1차 선교여행과 대조되어, 마가라는 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해 바나바와 심히 다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아무리 위대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사람이 남지 않는다면 이는 무익한 것이구나’를 꺠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유언과 같은 디모데후서에서도 디모데에게, “마가를 나에게 데려오라 그가 나에게 유익한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바울을 보며, 우리는 아무리 화려한 일들을 성취하더라도, 사람이 남지 않는다면 무익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가는 선교여행이라는 일로서는 적합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일이 사람보다 더 클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로 인해 사람이 그 일에 잡혀 먹힌다면, 바울이 아무리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울리는 꾕가리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에게도 선교여행이 아니라, 선교여행을 통해 사람들이 남았듯이 오늘 우리 삶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한 일들이 아니라 그 일들을 통해 사람이 남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사역을 통해 우리를 남기셨듯이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일로 우리가 위대해지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관심과 목적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일을 위대하게 성취하기 위해 사람을 누르지 않게 하시고, 교회가 그 무엇보다도 함께 한 마음으로 하나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