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통역 되나요?” 최근 유행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제목이다. 드라마도 참 재미있지만, 그 제목이 참 기깔나다. 사랑을 전하는 것은 통역을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신학대학원에 재학할 때, 룸메이트 배은찬 전도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주제는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새 계명을 주셨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마지막 설교를 남겼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하는 법도, 받는 법도 잘 모른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전한다. 하지만 마치 외국어를 통역하는 것처럼, 사랑에도 통역이 필요하다.
명절에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제는 한 가족이 한 마을에 모여 살지 않다 보니 서로의 문화가 다르다. 결혼을 통해 새롭게 생긴 가족 구성원은 더욱 문화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사랑을 하는 방법도, 사랑을 받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니 크고 작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갈등이 있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갈등이 생기지 않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언어, 사랑하는 방법, 사랑을 느끼는 순간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에서 결국 만나는 것이다.
직접적인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울 경우, 이처럼 돌고 돌아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글을 곰곰이 곱씹어 보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의 영이시고, 교제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전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에겐 뛰어난 통역관이 계신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보이지 않는 분이 전하신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눈에 보이는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신다.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 사랑은 통역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