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월 3일
[본문말씀]
여호수아 16장 4-9절
4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
5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은 이러하니라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에 이르고
6 또 서쪽으로 나아가 북쪽 믹므다에 이르고 동쪽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쪽을 지나고
7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를 만나서 요단으로 나아가고
8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쪽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9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도 있었더라
[묵상]
오늘 본문은 요셉의 자손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장면입니다. 요셉 지파는 요셉의 큰아들인 므낫세의 자손과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의 자손이 나누어 받습니다.
그런가 보다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사실 굉장히 의아한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요셉 지파가 분배받을 땅은 므낫세가 대표로 받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파를 보면 각 지파는 그 지파의 이름으로 기업을 받습니다. 둘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옛 정서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한 집의 재산은 모두 장남에게 갑니다. 장남은 받은 재산을 가지고 집의 형제들을 돌봅니다. 장남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입니다.
이러한 일반을 뒤로하고 오늘 므낫세와 함께 땅을 분배받는 자리에 에브라임이 선다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겠으나, 가장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관심은 장남보다 차남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볼 때도, 에서와 야곱을 볼 때도,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을 볼 때도 그리고 다윗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차남만 좋아하시는 것일까요? 장남은 미워하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말씀하실 때, “장남”이라 하시고, 그 “장남”을 “사랑하신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성경 속 차남들을 주목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주목하는 일반에 매이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주목받을 만하지 않다는 사람을 주목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를 ‘은혜’라고 말합니다.
오늘 에브라임이 그 땅을 받는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고, “그래 맞아,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야”라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분명 “그럼 므낫세는?”이라고 반문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에브라임을 생각할 때, 장남 므낫세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므낫세가 손해를 본 게 있을까요? 므낫세 자손들이 지나온 광야의 40년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이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것도 ‘은혜’입니다. 므낫세가 잘해서 그 자리에 세워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므낫세 역시도 자신의 형편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에브라임에게 베풀어진 은혜를 보고 이렇게 말해야 옳습니다. “에브라임이나 나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은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 안에 있으며, 그 은혜 안에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하신 일은 우리의 가장 못난 일들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시고, 자신이 이루신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받은 모든 것입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게 은혜 안에 있는 우리의 삶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그’나 ‘나’나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세워진 삶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은혜만이 나의 전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