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
[묵상]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드러가기도 전에 현재 머무는 땅에 머물겠다 말하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가 등장합니다. 이후에는 므낫세 지파 중 반도 남겠다 하기 때문에, 정확히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남겠다 합니다.
이 세 지파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고 현재 그 땅에 남겠다 하는 이유는 1절에 ‘심히 많은 가축 떼’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결정은 ‘가축 떼’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결정을 보며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가축이 많아지는 게 복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여기서 “가축”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돈이 될 수도 있고 집이 될 수도 있고 직장이 될 수도 있으며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그것 자체는 절대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간절하게 바라는 그것이 우리 삶의 제일된 우선 순위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절대 유익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 지파에게 가축이 많은 것은 ‘복’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축은 제일된 우선 순위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대치되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초유의 결정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단순히 가축이 많아지는 게 우리에게 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다음으로는 우리의 결정에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게 드러난다는 사실입니다. 세 지파는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그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겠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가축에 의해 결정을 합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아닌, 가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 결정을 보면 우리가 섬기는 게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추상적인 게 아닙니다. 당장에 내가 오늘 살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하는 그 태도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의한 결정입니다.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합니다.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우리의 모든 결정은 나에게 심히 많은 가축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결정을 하며 사는데, 그 결정마다 드러나야 할 것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입니다. 오늘도 결정을 해야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결정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드러나길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결정 속에 우리의 속마음이 드러납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결정 속에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