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묵상]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 중 예외없이 모두가 겪는 어려움은 ‘관계’입니다. 문제없는 관계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문제없는 관계가 문제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문제없는 관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지나가느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관계에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지나가는지에 대해 말해줍니다. 먼저는 죄를 자복하는 것입니다. 죄를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시인하는 것은 관계 회복의 시발점이 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살필 수 있는 마음과 눈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살필 수 있는 또 다른 눈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그 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한 값을 갚는 것입니다. 이를 관계 회복과 관련해 조금 더 특정지어 말하자면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회복에 중요한 것은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내가 상대에게 입힌 손해에 대해 정직하게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관계 회복에 있어 ‘용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밀양>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관계 회복에 있어 자신이 입힌 손해에 대해 종교적 신념으로 어물쩡 넘어가는 행태를 꼬집습니다. “하나님께 용서 받았으니, 사람에게까지 용서를 구할 필요는 없다”는 태도 말이지요. 이 영화에서 왜 이렇게 기독교를 꼬집고 있는 것일까요? 실제로 우리가 많은 경우 상대에게 입힌 손해를 정직하게 직면하고 용서를 구하기보다 쉽게 책임으로부터 면제되는 길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관계 회복은 잘못을 시인하는 것과 더불어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말을 자신이 직접 지키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 용서를 구하는 자리에 서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모습으로 죄인과 같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분은 ‘용서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죄인의 모습으로 용서를 구하는 자리에 서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용서를 구하는 자리에 서신, 예수님 안에서 마땅히 용서를 구하는 자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용서를 구하는 자가 되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 회복된 관계에서 마땅히 서로와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며, 또 용서를 하며 믿음의 여정을 걷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은혜에 날마다 놀랍니다.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직접 용서를 구하는 자리로 찾아오신 당신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합니다. 우리도 정직하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