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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번호

[사진출처 Unsplash, 작가 eduard]

여기가 좋다는 우리들에게

[컴그아침묵상] 1월 8일 

[본문말씀]

여호수아 18장 1-7절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2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 기업의 분배를 받지 못한 자가 아직도 일곱 지파
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4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5 그들이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되 유다는 남쪽 자기 지역에 있고 요셉의 족속은 북쪽에 있는 그들의 지역에 있으니
6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이 곳 내게로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여기서 너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으리라
7 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저편 동쪽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라 하더라

[묵상]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각 지파는 자신의 기업을 따라 전쟁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일곱 지파는 어찌된 일인지 그 일을 지체하고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주신 땅을 점령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며 이를 책망합니다. 

여기서 ‘지체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게으르다’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즉, 그들은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며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가 뭘 더 땅을 얻으러 갑니까?”라는 태도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삶에서 충분히 만족스럽다 생각하는 장면들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여기가 좋다”라는 상황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 이스라엘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꼴은 보지 못하시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드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수준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보며 만족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다리가 없는 한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어머님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 아이의 장애는 중증이었기 때문에 어느 병원에서도 이 아이가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그 진단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걷게 하리라는 일념하나로 아이에게 보조기구를 채워 걷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이 일은 아이에게 엄청난 고난이었습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실망한 아이는 엄마에게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며 울고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그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혼내기도 하고 때로는 달래기도 하며 걸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아이는 걷게 되었습니다. 걷는 것을 넘어 그 아이는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 선수도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아이가 스스로를 보며 만족하는 수준은 걷지 못하는 그 상태였지만, 어머님이 아이를 보는 수준은 걷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성장을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보실 때, 우리로 하여금 자라나게 하시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는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걷고, 더 성장하자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같이 지체하는 우리를 향해 “더 가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신뢰하고 순종하라고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말하는 이스라엘의 태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마다 땅을 선물로 주었으니 이를 받기 위해 걸음을 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의 자리가 주는 안락함과 평안함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가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멈췄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평안함을 더 신뢰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머물고자 하는 삶이 흔들릴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신뢰하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머물러야 할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아들을 주신 이가 어찌 우리의 삶을 우리의 수준에 머물게 하시겠습니까. 더불어 아들을 주신 이가 어찌 우리로 하여금 거짓된 우상을 신뢰하며 그곳에 머물게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현재 내가 섬기는 “여기”에서 우리를 건져내 “자신”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그분이 걷자 하실 때, 그분과 함께 우리의 한걸음을 뗍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계시기에 우리 삶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을 붙들며 우리 삶을 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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