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나니의 아들 선견자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3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묵상]
역대하 19장은 아합과 동맹 후 함께 전쟁에 참여한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장면입니다. 1절을 보시면 그의 귀환에 대해 ‘평안히 돌아왔다’라고 말하는데, 물론 전쟁에서 죽은 아합을 생각해 보면 상대적인 의미에서는 ‘평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엄밀히 따져볼 때, 이는 결코 평안이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2절에서 선견자 예후를 통해 하신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요.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에게 “네가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냐?”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은 남유다 왕들 가운데 선왕으로 꼽히는 왕입니다. 그가 행한 일들은 분명 다윗의 길을 따르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렇다고 해서 여호사밧이 완벽한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완벽함으로 승부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완벽하지 않음을 하나님의 완벽함으로 대체한 사건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벽함으로 승부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일은 우리의 완벽하지 않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완벽함을 내어주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꽃을 피우십니다. 그 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실수와 실패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되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맛보며 그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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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여호사밧의 ‘평안한 귀환’은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온전한 평안이 아니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완벽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벽함으로 승부한다.
우리의 실패 위에 피어난 하나님의 꽃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안에 참된 자유가 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것입니다. 날마다 당신의 완벽하심 안에 평안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