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월 15일
[본문말씀]
여호수아 22장 11-12절
11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묵상]
세 지파의 귀환과 여호수아의 축복
여호수아 22장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가 그들이 분배받은 땅, 곧 요단강 동편으로 돌아가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기 전에 그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전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전쟁은 공동체로서 함께해야 할 싸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세 지파의 수고와 헌신을 인정하며 요단강 동편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합니다.
제단 소문과 오해의 시작
그런데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랭해집니다. 요단강 동쪽으로 떠나 자리를 잡은 세 지파가 ‘제단’을 쌓았다는 소문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은 이를 듣고 분노했습니다. 이를 배교의 행위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가자마자 저렇게 배교할 수 있지?”, “이건 아간 때와 같은 거야.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돼.”
전쟁 직전의 대립
이스라엘 다른 지파 모두는 전쟁을 각오하면서 요단강 동편의 세 지파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단을 쌓은 것을 비난합니다.
오해를 풀기 위한 대화
이에 다른 세 지파는 그들에게 제단을 쌓은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 제단은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해 쌓은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해명이었습니다. 그제야 다른 지파들은 자신들이 오해했음을 알고, 그들의 말을 ‘듣고 좋아합’니다.
신뢰가 멀어지는 이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눈에서 멀어지면 신뢰가 약해진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단강 동쪽에 자리를 잡은 지파에 대한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떠나 강 건너에 거주하는 다른 지파들에 대해 염려와 걱정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와 몸도 떨어지는데, 가서도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을까”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른 제단’을 쌓았다는 소문을 들으니, 마음의 염려와 걱정이 ‘확신’이 된 것입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준비해 세 지파를 찾아왔던 것이지요.
신뢰와 오해의 교훈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을 때 우리는 상대를 나의 생각대로 재단합니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라는 이 말은, 상대에 대한 나의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태도가 꽤 많은 경우 이렇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우리의 태도 모두는 상대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뢰를 잃은 시대와 우리의 역할
우리 시대를 보면, 상대에 대한 신뢰를 잃어 사는 시대 같습니다. 신뢰할 수 없으니,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생각한 ‘너’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평행선을 걷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리고 나라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신뢰 없는 대화의 위험성
우리의 현실에서 내 생각과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바른 일입니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는 나의 말은 무익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곧 상대와 화합할 수 없으며, 존중할 수도 없기에 폭력만 남기 때문입니다. 폭력이란 물리적 접촉이 일어날 때만 성립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행동하는 모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신뢰를 회복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역사 속에 우리가 마땅히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신뢰를 잃은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신뢰를 잃은 세상에 다시금 신뢰를 회복하신 분이십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순진하게 ‘신뢰’니 뭐니라는 말로 치환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그 폭력에 동조해 나의 명분을 내세우지는 않을 수 있는 길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신뢰와 화합을 위한 우리의 다짐
상대를 신뢰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상대를 나의 생각대로 재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신뢰해 주셨습니다. 우리에 대한 신뢰가 꺾여야 할 그때에도 그분은 우리를 끝까지 신뢰하셨습니다.
이 길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와 이 나라에서도 함께 걷는 우리 컴그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 우리의 신뢰의 이유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