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가 좋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가까울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목사님으로부터 “사이가 좋다는 건, 그 거리가 가깝다는 게 아니라 서로 간에 적정한 거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간 제 안에 묵혀 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회자로서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목회자로서 늘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이’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밀착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성도님들과 그렇게 지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서로에게는 그만한 사이를 만들 만큼의 물리적인 시간도, 정신적인 교감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이 목사인 제 자신에게는 늘 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더 친해져야 한다.”, “더 가까워져야 한다.”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사이가 좋다’는 말의 의미를 ‘적정한 거리’라 할 때, 어쩌면 지금의 이 거리는 저와 성도님들 간에 충분히 좋은 사이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목회자로서의 강박이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 억지스럽거나 또는 욕심을 부려 적정한 거리를 무시하지 않아야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개척교회 목사로서, 현재의 그 거리를 적정한 거리로, 좋은 사이로 인정한다는 게 여간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해 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자신의 곁에 가장 가까이 계시지만 제가 그분께 유지하는 이 거리를 기꺼이 인정해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그분은 제가 그분께 유지하는 그 거리를 그 자체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그분 곁으로 억지로 이끌어 사이를 좁히지 않으셨고, 급하게 채근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그게 제가 그분을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여기는 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 그분은 나를 이렇게까지 존중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시구나 라고 말입니다.
적정한 거리를 인정하고 그 거리에서 우리 성도님들을 살피고 돌보는 일. 이 일이 바로 저에게 주어진 목회의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