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4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5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6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묵상]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아람은 끊임없이 북이스라엘을 공격했고, 본문은 그 상황을 ‘학대’라고 표현합니다.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간절한 기도는 “이것만 해결된다면 제가 무엇을 못하겠습니까”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시고, 아람의 학대에서 북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아하스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호아하스는 소원이 이루어진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흔히 소원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결코 소원의 성취 여부로 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여호아하스처럼 간절히 바라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다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소원들이 이루어진 지금, 그때의 간절함조차도 희미해진 경우가 많습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소원이 이루어질 때가 아닙니다. 소원의 성취 여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판단한다면 그것은 피상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품으신 소원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시고, 우리 삶에 그 생명을 심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살며, 삶이 풍요롭든 가난하든 상황의 여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그분 자신으로 삶을 바라보았습니다(빌 4:13). 이것이 바로 ‘자족’입니다.
사랑하는 컴그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가진 소원보다 그분의 소원이 더 크고 깊습니다. 그러므로 소원의 성취 여부로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소원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충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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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여호아하스는 간절히 구해 소원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소원의 성취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진 더 큰 소원에서 깊어집니다.
그 소원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소원을 따라 살겠습니다. 당신의 소원 안에 나의 삶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