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7월 6일
[본문말씀]
디모데전서 6장 3-6절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묵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제일된 가치는 ‘나’ 자신입니다. 그 단적인 예로 광고를 보다보면, ‘나’를 가꾸어줄 상품, ‘나’를 더 뛰어나게 만들어줄 대상을 선전하거나 또는 ‘내가 느끼는 그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식의 메세지 전달이 주를 이룹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권면 역시도 이렇게 자신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것에 대해 경계하도록 권하는 권면입니다. 바울이 경계하라고 권하는 자들의 ‘자기 제일 가치’는 굉장히 교묘했습니다. 왜냐하면 경건으로 포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냥 보아서는 모두가 다 이 사람들의 경건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경건은 ‘변론과 언쟁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변론과 언쟁을 통해 결국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경건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한다”라고 말이지요.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여긴다는 것은 경건을 수단으로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경건을 통해 남들보다 자신이 더 우월해지길 원했고, 경건을 수단 삼아 사람들 위해 군림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사람은 수단 삼아 자신들을 높인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내’가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는 모든 것을 나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는 비극을 낳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수단을 삼은 자들의 ‘돈’이었는데, 바울은 이후에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다’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들이 사람을 경건을 이익을 수단 삼아 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말하는 이 세상이 낳는 비극은 이처럼 사람까지도 수단으로 삼아 나를 높이는 것입니다.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가 어떠한 가치를 가졌던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들은 굉장히 교묘합니다. 오늘 본문 속 ‘그들’과 같이 말이지요.
결국 이러한 생각과 가치는 ‘하나님’ 마저도 우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킵니다. 철저히 ‘나’를 위한 신으로 말입니다. 하나님도 이용하고 하나님도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역시도 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로 분간합니다.
이러한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가 믿는 신앙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모두가 자신을 위해 상대를 사용하고 수단으로 삼는 세상 한복판에서 도리어 상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결코 ‘나’를 제일된 가치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하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자신이 이 세상의 근본이시며, 근원이심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자신을 우리들에게 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위해 우리를 수단으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분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입니다.
나를 위해 더 많은 것을 가지라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오히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다. 내 자신만을 위해 폭주 기관차와 같이 달려가는 인생과 세상을 향한 처방전은 오직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입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인생의 유일한 처방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 삶의 소망입니다. 나에 빠져있는 내 삶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더욱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