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그아침묵상] 12월 20일
[본문말씀]
창세기 20장 17-18절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묵상]
나는 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늘 본문은 어디서 본 것 같은 일을 또 기록해 둔 것 같습니다. 정말 복붙(복사+붙여넣기)한 것 같이 말이죠. 아브라함이 다시금 아내를 누이라 속여 그 지역의 왕 곁으로 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이미 다 아는 것처럼 이 엉킨 실타래를 푸시고 교통정리를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라를 궁으로 들인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관계를 말씀해 주시고, 어서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보내라 말씀하십니다. 그때 한 가지를 더 말씀하시는데, ‘아브라함이 너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날,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 이 상황의 시발점이 된 그를 꾸중(?)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결말이 참 희한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하면서 마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아브라함(사라)으로 인해 닫혔던 아비멜렉 집안의 태를 여십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참 요상(?)합니다. 아브라함의 연약함으로 일어난 이 일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기도하게 하심으로 아비멜렉의 집안의 태를 여셨으니 말입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향해 “네가 그렇게 하고서도 믿음의 조상이냐?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해서 어디에 쓰겠냐? 이번에도 사라를 누이라 속였냐? 거짓말쟁이야!”라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 아비멜렉의 집안을 살피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너희들이 아무리 손가락질 하더라도 여전히 내 약속을 이루어갈 나의 사람이다”라고 말이지요. 이게 아브라함의 실패에도 여전히 아브라함을 통해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를 통해 아비멜렉 집안의 태를 여심으로 말씀하시는 내용이 됩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복음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또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정죄를 당합니다. “네가 그렇게 하고서도 신자냐?”라고 말이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너의 신자됨은 내가 보장한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구체적이고 분명한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아무리 손가락질 해도, 나는 내 사랑을 거두지 않을 거다. 내 아들, 예수가 이루어낸 모든 의로움 안에서 보는 그 신자가 진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은 예수께서 자신의 몫으로 십자가에서 모두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로움과 유일한 자랑은 예수, 예수, 예수 뿐입니다. 이 복음이신 예수 안에서 오늘도 용기를 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대신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밝히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